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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독 스스로의 담백함을 버렸을까?"


손예진 주연의 덕혜옹주를 보고 왔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의 이야기로 일단은 실존 인물을 기본으로 설정하여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일대기와 같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어디까지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을 뿐이지 영화 속에서 그녀가 겪은 일들이 모두 '역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 영화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서도 안 되고 왜 역사와 틀린 이야기를 들려주냐고 따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그냥 실존 인물을 이용한 픽션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물론 그녀가 겪은 아주 큰 사건들은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그냥 딱 그 정도만 사실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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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서 애국심을 강요하는 장면들은 확실히 요즘 흔히 얘기하는 국뽕에 가까운 부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녀가 연설을 하거나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 폭탄을 투하하는 등의 장면들은 실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의도적으로 삽입한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애국심을 자극하는 연출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사건이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명량에서의 대다수의 장면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이 되었던 장면들이기에 그나마 좀 거부감이 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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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대부분이 허구입니다. 애초에 소설에 기반한 작품이고 각색을 통해 좀 더 자극적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사실에 기반되지 않은 점에서 거부감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연출적으로 이렇게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단순히 애국심 강조에서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관객들을 어떻게 울려볼까?'라고 맘 먹고 만든 듯한 영화입니다. 특히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끌려가고 난 후 망명을 결심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거의 울음바다의 연속입니다.

 

쉴 틈을 주지를 않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나마 자기 편이던 하녀도 강제로 한국으로 추방되고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이건 정말 '이래도 당신들이 울지 않을 것 같애?'라고 말하는 것 같을 정도로 관객들을 울리는데 총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는 그것이 비록 픽션일지라도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망할 연출 때문에 괜찮아 보이던 이야기마저도 거부감이 들게 되어 버립니다. 좀 더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었더라면 오히려 이야기의 재미도 훨씬 살아났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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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좀 의아하더군요.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과장된 어떤 연출이 보였던 작품이 없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렇고 호우시절도 그렇고 굉장히 절제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왜 이 작품에서는 유독 과장된 장면들이 이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더욱 빛났던 부분이 손예진씨의 연기입니다. 대단하더군요.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그녀의 연기는 올해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기에 마땅하다고 생각될 만큼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의 그녀의 인생에 걸쳐 연기했던 모든 부분이 보여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혼을 불태우는 듯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의 전 작품이 '비밀은 없다'에서도 마지막으로 다다를 수록 보여지는 그녀의 연기는 대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연기는 어마어마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물론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요즘 싸우자 귀신아에서 예쁨을 담당하고 있는 김소현양은 여기서도 여전히 예쁘고 박해일은 여전히 할아버지 분장이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윤제문은 혈압 제대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미란이나 정상훈, 박주미, 안내상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조연을 맡아주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연기에서 불만을 가질만한 부분은 없지 않았나 싶더군요.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이토록 배우들이 열연을 보여주어서 그런지 몰라도 감독이 너무 힘을 많이 준 것이 최대의 단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좀 더 담백하고 정갈한 느낌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잊혀지지를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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