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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를 '악'으로 생각해야 할까?"

 

거의 모든 기대작들을 다 보고 나서 딱히 볼 영화가 없어서 뒤적거리다가 크리스파인 주연의 '로스트인더스트'가 눈에 띄여서 보고 왔습니다. 사실 감독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면 포스터가 홍보에도 사용되었을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던 것을 보면 감독도 딱히 흥행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되었죠. 하지만 뭐 크리스 파인과 벤 포스터 그리고 제프 브리지스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나와서 그냥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더군요. 서부 텍사스를 주 배경으로 한 황량한 먼지 속의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은행에 빚진 4천만원 가량으로 인해 기름이 나오는 땅을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한 토비(크리스 파인)가 그의 형 태너(벤 포스터)와 전략적으로 은행을 터는 과정과 함께 은퇴를 앞둔 레인져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와 그의 파트너 파커(길 버밍햄)가 그 뒤를 쫓는 과정을 큰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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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단순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넣어두고 있습니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돈'인데 두 형제가 은행을 털게 되는 이유임과 동시에 파커가 영화 중반 읊조리는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연 자본주의의 피해자가 자본주의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을 터는 피의자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를 '악'으로 생각하고 감상을 해야 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돈을 무노력으로 갈취해 간 형제의 행동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너무나도 많은 피해자가 생기고 그 피해가 곧 가난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가난이 대를 이어가는 현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형제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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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는 개성있는 캐릭터들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한층 올리고 있는데 각 캐릭터들은 그 하나하나가 어쩌면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선 형 태너는 굉장히 마초적인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도 힘들며 즉흥적이며 충동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고를 칠 것 같은 긴장감은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전달됩니다. 어쩌면 느슨해질 수 있는 영화의 담백함에 쫄깃함을 전달해주는 거의 유일한 캐릭터이기도 한데 여튼 그런 그의 마초적인 캐릭터는 역시나 과거의 캐릭터입니다. 지금은 마초적인 성향의 남자가 대세가 아닌 시대이죠. 그래서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현 시대에서 사라지죠.

 

마커스는 레인져입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죠. 그는 노련함과 경험과 직감을 가지고 있을 만큼 오랜 세월을 보낸 텍사스 레인져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정에 이끌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그는 혼자이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 어쩌면 생포했어야 할 태너를 어쩌면 자신의 파트너를 죽였기 때문에 아무런 흔들림 없이 죽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 하죠. 그리고 은퇴를 합니다.

 

만약 그의 직업이 경찰로 등장을 했다면 결말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죽이든 살리든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마무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가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 한 것은 그의 직업이 '레인져'라는 어쩌면 과거의 산물이라 생각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만남에서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 하죠...

 

그의 파트너이자 인디언인 파커는 이 영화의 다른 피해자 중에 한 명이라고 보여지는 캐릭터입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겼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은행(자본주의)이 또 다시 빼앗아가고 있다고요. 그리고 결국 그는 태너(백인)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애초에 인디언은 그야말로 과거의 심볼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라져 버리는 캐릭터가 된 것이죠.

 

여기서 가장 성공적인 인물인 토비는 그야말로 현대적인 인물입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에 의해 땅을 빼앗기게 될 처지가 되자 은행을 털어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카지노를 통해 세탁을 하고 세탁한 돈으로 대출을 갚고 신탁을 만들어 땅을 지킵니다. 그리고 시추기계를 구입하여 석유를 시추하죠. 아마 이 영화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게 된다면 결국 토비는 자신의 땅을 아이들과 전부인에게 주었지만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가난하지만 똑똑하니까요.

 

생각지도 못 했는데 정말 의외로 크리스 파인의 연기가 꽤 잘 어울렸다고 생각되고 벤 포스터의 마초적인 캐릭터가 인상 깊었던 영화였습니다. 제프 브리지스는 뭐 그 존재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더군요. 그야말로 오랜 세월을 보낸 레인져의 포스가 전달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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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상황과 캐릭터를 감독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장되거나 화려한 앵글도 없고 과한 클로즈업도 없습니다. 오히려 배경을 보여줄 때면 광곽을 이용하여 황량한 벌판을 자주 보여주고 있으며 캐릭터들의 대화는 '저게 친한건가 싸우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머와 진지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스펜스를 잘 살리고 있는데 3인칭으로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장면을 보여주면 그들이 긴장을 타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영화는 고요함 속의 파도가 느껴지는 듯하죠.

 

사실 원제인 '헬 오어 하이 워터'라는 제목을 왜 '로스트 인 더스트'라고 바꿨어야 했는가를 의아해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렇게 나쁜 제목은 아닌 듯 하더군요. 물론 '지옥 또는 파도(?)'라는 제목도 그들의 상황을 잘 표현한 제목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황량함과 까끌함 그리고 배경인 텍사스를 생각하면 '로스트 인 더스트'라고 지은 국내식 제목이 꽤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됩니다.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괜찮은 영화라고는 생각됩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눈에 피로를 주지 않으며 보고 나서 왠지 말할거리가 많은 그런 작품으로서 비수기인데다가 딱히 볼 영화가 없는 현재 극장가에서 한 번쯤 찾아볼 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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