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 / 01 / 13 / 001]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톰 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즈'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톰 포드라면 제가 아는 사람은 디자이너인 톰 포드 밖에 없는데 디자이너였던 사람이 감독을? 그런데 영화를 보고 감독을 찾아보니 제가 알던 그 디자이너가 감독이 맞더군요. 확실히 비범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감독의 타고난 배경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영화의 영상미는 묘한 느낌이 듭니다. 세련된 느낌도 들면서 클래식한 느낌마저도 드는데 마치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느낌도 들고 어떤 장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도 들더군요.

 

그런 영상미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스릴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서 주는 긴장감은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는데 그런 이야기의 건조함을 영상미가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의 영상미는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영화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간단합니다. 성공한 미술관 관장인 '수잔'은 어느날 전 남편이었던 '에드워드'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즈'라는 소설의 초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시작하죠. 영화는 액자구성으로서 현실의 수잔과 소설 속 '토니'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의 중요 이야기는 사실 현실에서의 이야기보다 이 소설 속 이야기에 있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로 인해 현실의 수잔조차 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고 현재의 자신의 삶에도 변화를 주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녹터널 애니멀즈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주인공 토니가 자신의 부인과 딸을 납치하고 강간한 용의자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수잔의 이야기나 영화 속 토니의 이야기나 크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드라마와 범죄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죠.

 

하지만 수잔의 과거 회상 장면 중 에드워가 한 대사를 생각하면 이 소설도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회상 장면 중에서 에드워드는 소설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죠. 그 대사를 돌이켜 보면 녹터널 애니멀즈라는 이 소설도 결국 에드워드 자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과연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 것일까요?

 

>>

 

역시나 수잔의 회상 장면을 보면 수잔과 에드워드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 결혼을 반대합니다. 수잔은 결국 자신과 똑같은 부르주아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 에드워드는 인성은 둘째치고 부르주아의 삶을 영위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죠.

 

수잔은 그런 엄마의 말에 반박하고 결혼하지만 결국 돈 많고 잘 생기고 능력있는 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심지어 에드워드의 아이까지도 낙태를 하게 되죠.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런 모습들을 오롯이 그리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버림받은 에드워드가 자신의 그런 과거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 바로 수잔에게 보낸 녹터널 애니멀즈죠. 소설 속의 토니는 에드워드 그 자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인과 딸이 납치되고 있음에도 전혀 힘을 쓰지 못 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죽은 딸은 낙태를 당한 딸일 것입니다. 팔이 부러지고 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낙태로 상처입은 아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용의자들을 찾아주고 그들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응징하지만 결국 암으로 죽게 되는 형사는 그런 에드워드의 다른 이면일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의 응분을 그런 식으로 표출을 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나가지 못 하고 사라지는 인물이죠.

 

>>

 

그런 소설을 읽으면서 수잔은 스스로 과거의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소설 속에서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잔은 스스로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감정으로 책을 덮어버리죠.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한다든지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무언가가 불안한 듯이 말이죠.

 

그런 수잔의 행동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 속 사건들과 자신의 과거의 행동들을 연결지어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죠. 그리고 점차 죄책감을 느낌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 그녀는 남편과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왜 전화를 안 했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뒤로 갈 수록 그런 장면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 남편이었던 에드워드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만남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녀가 왜 그를 만나려는 것인지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그를 만나 지난날에 대한 용서를 구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새 시작을 하려는 것인지 그것은 관객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서 그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갑의 입장에서 자신만만하던 그녀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담으며 영화는 끝이 나죠.

 

>>

 

아마도 에드워드는 저 마지막 수잔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모든 것을 계획했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은 에드워드 본인의 이야기이고 그것으로 인해 수잔은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의 행동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에드워드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죠.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 조차도 나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복수에 대한 마무리를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에드워드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영화 속 수잔 뿐만이 아니라 영화 밖 관객까지도 감독이 꾸민 복수극의 대상이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이 영화는 한 나약한 남자의 복수극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나약한 남자의 복수극치고는 시종일관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긴장감의 공신은 역시 앞서 말했던 영상미와 더불어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있었구요. 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는 스크린에 비춰지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

 

하지만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래서 추천하기는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묵직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스릴러 드라마를 원하신다면 한 번 감상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영상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티켓값은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