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7 / 02 / 26 / 011]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를 보고 왔습니다. 개봉 전부터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해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이 유력시 되고 있는 작품인데 영화 자체가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왜 이런 의미를 던지려는 작품들은 쉽게 만들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더군요.


>>


영화는 사이론이라는 한 흑인 아이의 성장기를 들려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의 부제는 '리틀'이고 2장의 부제는 '샤이론' 3장의 부제는 '블랙'입니다. 이렇게 영화의 구성을 3장으로 나눈 것은 당연하게도 각 구성에서 일어나는 분기점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1장의 샤이론은 리틀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후안이라는 남자를 만나죠. 사실 키 작고 유약한 샤이론은 항상 놀림을 받는 어찌 보면 왕따였고 항상 아이들을 피해 도망을 다닙니다. 심지어 유일한 혈육인 엄마조차 그에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을 주지 못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후안은 어쩌면 첫 번째 달빛이었을 겁니다.


만약 그 시절 샤이론에게 후안이 없었다면 과연 후안은 '샤이론'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장난끼 많지만 듬직하고 아버지 같았던 후안의 존재는 샤이론이 최소한 '리틀'이란 존재에서 '샤이론'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해 준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힉에 사실 언제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후안의 죽음이 '리틀' 시절에 발생하지 않은 것은 샤이론에게는 신의 가호이자 연출적으로 후안이 샤이론의 달빛이었다는 것을 확정짓는 것이었죠.


>>


어쩌면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 '리틀'을 지나 '샤이론'의 입장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유약한 존재입니다. 왕따였던 어린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놀림감이 되고 있죠. 심지어 이 시기에 샤이론은 점차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2장의 제목이 '샤이론'인 이유는 샤이론이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결론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의 발현(?)의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친구인 케빈입니다. 그는 유일하게 샤이론에게 별명을 불러주는 친구이며 유일하게 샤이론의 정체성을 이해해 주는 친구였죠. 그가 같은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은유적으로라도 보여준 장면은 샤이론과의 장면 외에는 전혀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1장에서 후안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후안이 샤이론이 성장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지게 도와준 인물이라면 2장에서의 케빈은 육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샤이론의 성 정체성을 일깨워주고 (어쩌면) 격려도 해 주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2장의 마지막에서 타의에 의해 멀어지게 되긴 하지만 달빛 아래에서 그를 일깨워 주었던 그를 샤이론은 절대 잊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마지막 장에서 샤이론은 'B'로 불립니다. 치아에 금으로 된 틀니를 끼우고 금으로 치향하며 흑인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죠.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질이 된 그는 더 이상 '리틀'이나 '샤이론'이 아닌 그야말로 'B'인 것처럼 보입니다. 강해진 이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죠.


실제로도 그는 결국 약을 파는 인물이 되었고 자신의 구역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굽신거리며 누구나 친해지려고 하는 인물이 되죠. 하지만 그런 인물이 되었음에도 그는 케빈의 전화 한 통으로 다시 샤이론이 됩니다.


어느 날 걸려온 케빈의 전화로 'B'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심지어 회상에 대한 꿈을 꾸고는 몽정까지 할 정도죠. 그는 스스로 강해지려고 했으며 육체적으로 강해졌지만 여전히 그의 몸은 과거 샤이론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스스로 버릴 수 없었던 케빈을 다시 찾아가게 되죠. 그는 달빛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


하지만 이런 일련의 성장기에서 샤이론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는 인물은 바로 그의 엄마입니다. 어릴 적부터 과도한 감정을 이입하던 그녀는 성장기였던 '리틀' 때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 했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시기였던 '샤이론' 때도 그에게 돈을 달라는 등의 협박을 하면서 그에게 부담을 줍니다.


과연 샤이론이 정상적인 엄마 밑에서 성장을 했더라면 후안이나 케빈같은 존재가 필요했을까요? 필요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체'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부모라도 아들의 동성애 성향을 쉽게 인정하지는 못 할 테니 분명히 갈등이 생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샤이론에게 영화 속 고통보다 큰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오프닝은 이 영화에서 문제의 시작은 엄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간혹 롱테이크를 이용한 촬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화려한 연출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냥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죠. 최근 감상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비슷한 느낌의 연출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했구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리틀'을 연기했던 아역부터 성인이 된 'B'를 연기한 배우까지 모두들 각각의 성장기에 맞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각 구성에서 보여주어야만 했던 심리적 변화를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3장에서 'B'와 '샤이론'의 상반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트레반테 로데스의 연기는 대단하더군요.


>>


흑인들 세상에서도 퀴어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절대로 재미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지루할 수도 있죠. 실제로 뒤에서 감상을 하던 아저씨는 깊은 수면에 빠지시더군요. 그러니 이 작품을 보실 때는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내용도 없으니 무조건 리뷰를 한 두개는 읽어보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가 됐든 동행인이 됐든 후회할만한 일이 반드시 생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만큼 영화적 완성도나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꼭 한 번쯤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