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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7 / 01 / 026]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보고 왔습니다. 넷플릭스와의 동시 상영으로 인해 국내 멀티플렉스 사영관들은 내부적으로 상영 불가 방침을 내려서 일반 지역 상영관들 밖에 상영을 하지 않은 관계로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그래도 먼) 서울극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로 관객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오히려 상영을 안 하는 것이 손해가 아닐까 싶기도 하더군요.

 

설국열차 이후 4년만에 신작인 옥자는 여전히 봉준호 감독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특이한 설정과 독특한 이야기 그리고 재밌는 캐릭터와 그런 가벼움에 비례하는(?) 가볍지 않은 메시지는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그만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작품에서나 볼 법한 연출이긴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은 봉준호 감독만의 스타일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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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번 작품에서는 유전작 조작이지만 조작이 아닌 것처럼 광고를 한 슈퍼 돼지를 각 나라에 보낸 뒤 10년 후 가장 우수한 돼지를 가려내어 품종 개량을 하려는 기업의 음모와 그 기업으로부터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고군분투 액션(?)을 펼치는 미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사실 중후반까지는 이야기 자체가 그렇게 무겁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에서 보자면 살인의 추억에 가까운데 거의 중후반까지 가벼움이 느껴지던 영화는 거의 엔딩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 묵직한 연출들을 보이면서 마지막에는 여운을 남기며 끝나죠. 이번 옥자도 전반적인 느낌이 그런 살인의 추억과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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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반까지 기업과 대립하는 미자와 ALF라는 조직의 모습을 그렇게 무겁게만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가벼운 축에 속하죠. 코믹한 연출과 적절한 액션으로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기 전에 '재밌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거의 극 후반에 다다라서 미자가 공장에 도착하게 되면서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광경들을 관객들에게 직설적으로 보여주죠. 살아있는 돼지를 총 한 방에 죽이고 반으로 가르고 부위별로 분리하는 모습은 바로 직전까지 보여주었던 연출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비쥬얼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잔인하죠.

 

이런 연출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부분인데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나 영화 밖 관객들이 생각지도 못 하게 잔인하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연출들을 꽤 보여주었습니다. 마더에서의 엄마의 살인 장면이나 괴물에서의 딸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 등을 보면 봉준호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 자신의 관점을 가차없이 진행해 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자에서도 과연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까지 보여주었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전까지 이어져 오던 이야기에서 관객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이었거든요. 물론 생각 이상으로 가차없는 연출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메시지가 더 극대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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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옥자에 집중되어 있는 '식용'을 위한 '사육'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그렇지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포괄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처음 옥자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트럭에 태웠을 때 운전을 했던 기사는 시종일관 회사에 대해 비관적으로 얘기를 합니다.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어 있고 자기 일 아니라고 하면서 사고가 나도 신경도 쓰지 않죠.

 

왜 그런 장면을 넣었을가요? 노동자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연출을 통해서 감독은 인간 세상에서도 가축되는 돼지와 다를 바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적은 임금, 가입도 안 된 4대 보험, 자기들이 필요한 곳에 이용만 하고 계약 해지하는 계약직들....그런 존재들도 식용을 위해 가축되어지는 돼지와 비슷하다는 점을 짧게나마 보여주죠.

 

이후 이 캐릭터는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그래서 더더욱 옥자와 비슷한 입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옥자도 결국엔 탈출....이라기보다는 구출이죠. 구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트럭 운전을 했던 이 캐릭터도 어쩌면 자신 원했던 조직에 가입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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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유적인 연출은 미자가 처음 서울로 올라갔을 때도 보여집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회사원들 사이에서 미자만이 함께 올라가다가 방향을 틀어 반대로 움직이죠. 거의 대놓고 노린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장면들을 보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사욱되는 대상이 식용으로 키워지는 동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건 하나의 견해이자 추측인데 미자라는 캐릭터는 과연 일반적인 캐릭터가 맞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캐릭터는 평범한 식생활을 즐기는 사람을 얘기하는건데 극 중에서 미자는 한 번도 고기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옥자가 끌려가고 상심한 미자에게 할아버지가 백숙을 만들어주지만 그것도 먹는 장면이 없죠. 생선을 먹는 장면은 있습니다만 실제로 사육된 고기를 먹는 장면은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옥자를 구출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과연 이전까지의 미자가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을 뿐 아니라 옥자나 같이 데려온 새끼와 정답게 노는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공장에서의 사건 이후 옥자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것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따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쁜 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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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들을 연기한 안서현 양의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몸도 많이 굴렀을 것 같구요. 여러모로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서양의 연기파들을 한 컷에서 보는 재미가 대단했는데 틸다 스윈튼이나 제이크 질렌할, 릴리 콜린스가 안서현이나 변희봉, 윤제문들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은 꽤나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군요.

 

영화는 재밌습니다. 기본적인 재미는 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일단 논외로 치고 말이죠. 제작비를 외국에서 제공하기는 했지만 한국 감독이 만든 작품 중에서 최고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옥자의 CG도 나쁘지 않고 여러 장소에서 찍은 장면들도 꽤 볼만했습니다. 특히 세븐, 패닉룸 등의 촬영을 맡은 다리우스 콘쥐 촬영 감독의 능력 덕인지 화면빨이 장난이 아닌 장면들이 꽤 많이 보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봉중호 감독스러운 작품을 보여주어서 좋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좀 더 무게감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메시지는 명확했고 이야기는 단순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서 무엇하나 모자란 부분은 없었지만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작품은 아니었네요. 그래도 추천은 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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