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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0 / 03 / 043]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을 보고 왔습니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은 뼈에 사무칠 정도로 먹먹한 내용으로 2번을 읽을 때마다 그 먹먹함이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영화화를 거치면서 과연 어떻게 변화를 보였을지 궁금했습니다. '도가니'나 '수상한 그녀'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황동혁 감독의 첫 사극 작품이기도 해서 연출을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했구요.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원작을 잘 각색한 영화입니다. 원작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길을 찾으면서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죠. 그리고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은 배우들을 기용하여 무엇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는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영화의 분위기가 정말 순수한 사극의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광해'의 분위기보다는 '사도'의 분위기를 생각하고 가셔야 할 듯 합니다. 영화가 많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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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느 정도 정보를 들어서 알고 있는대로 1636년 병자호란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조는 청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마지막으로 대피한 곳이 남한산성이었고 여기서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전쟁과 항복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왕으로서 인조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조의 모습은 찌질해 보이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영화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얼마나 흥미롭게 들려주느냐가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굉장히 묵직합니다. 정말 정통 사극이라는 느낌이 많이 강하죠. 하지만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서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지루할 틈이 거의 없었죠.

 

영화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토론 장면을 비롯하여 종종 벌어지는 전쟁 장면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영화의 지루함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토론 장면인데 이 장면은 배우의 연기가 압권이기 때문에 뒤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영화는 영화의 분위기에 비해서 꽤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흥미로운 전개가 없었다면 꽤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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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언급하기 전에 눈여겨 볼 부분은 이 영화의 음악입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일본의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인데 흔히들 알고 있는 레오형에게 오스카 상을 쥐어준 '레버넌트'의 음악 감독입니다. 그래서 좀 의아했습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 영화의 음악을 맡으면 과연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사실 처음 이 영화의 스코어 음악들을 들었을 때는 음악 감독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음악에서 한국적인 느낌이 많이 풍겼거든요.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고 봐도 할 만큼 무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나온 음악들은 누가 들어도 한국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전통 악기들이 사용된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고 멜로디도 묘하게 한국 음악스러움이 느껴지더군요. 그러면서도 레버넌트에서 느껴졌던 황량함이라든지 추운 겨울의 이미지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강력하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인물들의 대사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음악들이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이 되고 있고 음악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좋은 요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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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얘기하자면 누구하나 버릴 인물이 없습니다. 항복을 권하는 최명길의 이병헌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의 김윤석은 뭐 대체 불가한 연기들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에서 최명길의 느낌과 김상헌의 느낌을 고대로 살렸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항복을 권할 수 밖에 없는 고뇌에 찬 캐릭터였던 최명길을 연기하는 이병헌은 과연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으며 정이 있지만 없는 듯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윤석은 정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그 둘이 열띤 주장을 펼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서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누구 하나 틀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고 정말로 다른 주장을 하는 둘의 모습은 관객들마저 고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라는 if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죠.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는 여러모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조금 의외였던 것이 인조를 연기한 박해일인데 사실 원작에서도 인조가 그렇게 찌질하게 보이는 모습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극 중에서는좀 더 뭔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보다보면 '역시 인조구만'이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결정도 내리긴 하지만 뭔가 정상적인(?) 결정을 잘 내리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들이 왠지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서 의아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의아함을 넘어서 인조를 연기하는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뭔가 '왜 나한테 그런걸 물어봐?'라는 느낌의 표정들도 보이면서 '니가 좀 알아서 해'라는 느낌들을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묘하게 끌립니다. 당연히 연기를 잘 해서 그렇겠지만 뭔가 박해일이라는 배우 본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죠.

 

고수는 지금까지 해 왔던 연기의 비슷한 노선에 있는 하지만 다른 모양의 연기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움을 느낄만한 연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천민이지만 많은 생각을 가지고 고뇌에 찬 듯한 그의 눈빛 연기는 영화와 어울리긴 했지만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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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극적이고 참담한 전쟁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나라의 끝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김훈 작가의 원작도 큰 사실들을 기반하여 만들어진 소설인만큼 픽션이라고 보기는 힘든 영홥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팩트라고 보기도 힘든 영화인만큼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인물간의 대립이나 큰 사건들은 팩트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한 대립은 조선과 청의 대립보다는 조선 내부적으로 보이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항복과 전쟁을 주장하는 둘의 대립은 사실상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니 만큼 그들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인조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렇고 쉽사리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나라 자체가 멸망하기도 할 뿐 아니라 어느 주장이 '옳다'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런 역사적 상황과 그런 상황을 최대한 담담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만나서 영화는 꽤 재밌는 정통 사극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사도' 이후로 이런 진지한 사극은 오랜만이었는데 그만큼 재밌었습니다. 쓸데없는 신파도 없고 쓸데없는 감정이입도 없습니다. 충분히 격하게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감독이 최대한 절제한 느낌이 역력하게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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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족끼리 보기에도 괜찮고 데이트 용으로도 괜찮습니다. 친구들하고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구요. 특히 최근에 어떠한 과거를 경험했던 이 시점에서 보면 묘하게 감정이입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배우들의 연기들도 그냥 다들 포텐 터졌다고 할 수 있을만큼 대단했구요.


감독이 눈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추운 영홥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시린 그 겨울을 잘 보여주었고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노력이 충분히 보상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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