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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0 / 14 / 04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고 안드로이드는 무엇인가? 등의 심오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블레이드 러너(1982)가 저주받은 걸작으로 평가 받고 30여년이 지나서 그 후속편이 드니 빌뇌브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죠. 오리지널 작품은 당시로도 대단한 비쥬얼을 보여준 작품이었고 sf답지 않은 심오한 주제도 던지고 있었기에 과연 그런 전작의 완성도를 이어받을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카리오와 컨택트로 헐리우드의 블루칩이 되어가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필모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만큼 이번 작품은 후속편으로서의 위치를 잘 알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를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냥 결과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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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작품은 오리지널 작품과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서도 후속편 스스로의 이야기도 전개해 나가는데 이 둘의 연결이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이질감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전작보다도 이야기에 대한 흥미는 훨씬 큰 편입니다. 다양한 떡밥이 존재하고 그 떡밥을 하나하나 회수해 나가는 것을 보면 과연 이 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라는 자연스러운 관심이 생깁니다.


전작에서는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레플리컨트)냐 아니냐로 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드로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K가 안드로이드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데커드도 마찬가지구요. 그가 어떤 존재냐 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왜 존재해야만 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작품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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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가짜와 진자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K라고 할 수 있구요. 그리고 그 주변 인물 주변에서 중요한 인물이 조이입니다. 조이는 그야말로 가상입니다.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이고 홀로그램이죠. 그녀는 K 혹은 자신의 주인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OS일 뿐입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된 그녀가 다른 안드로이드의 몸을 빌리면서까지 K와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장면등을 보면 과연 저 사랑이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그녀가 사라지기 전 K에게 말하는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 그녀의 사랑은 절대로 가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게 만들죠. 그렇다면 그녀는 단순히 프로그래밍 된 자신 스스로를  벗어난 존재가 되었던 것일까요?  마치 '그녀'에서 호아킨 피닉스를 사랑했던 '그녀'처럼 말이죠. 혹은 결과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일들을 행한 주인공 K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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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다른 존재가 스텔리네 박사입니다. 스텔리네 박사는 실제 인간이죠. 하지만 '약한 면연력'으로 인해 한 공간에서 갇혀 지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상에 맡기고 그것을 이용하여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나가죠. 그녀 스스로도 그런 환경으로 인해 '가짜 추억'을 잘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렇기에 이 인물은 K와는 완전히 반대의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K는 가짜죠. 어떤 이유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여튼 실제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입니다. 인간의 명령을 거부할 없는 존재였지만 결국 그러한 한계를 벗어난 존재죠. 하지만 스텔리네 박사는 진짜입니다. 인간이고 살아있죠. '살아있다'라는 의미를 여기서 인간에게만 부여하긴 뭐하지만 생물이라는 점에서 살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가짜입니다. 가짜 숲을 만들어내고 가짜 생일 파티를 만듭니다. 마지막에 K가 '진짜 눈'을 맞으며 죽어갈 때 그녀는 '가짜 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감독이 너무 친절하게 깔아준 장치들이 이 외에도 많아서 해석의 여지조차 없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녀가 K의 기억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 시점에서 K가 자신의 기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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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있어서 재밌는 부분들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러브. 그녀는 왜 다른 안드로이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는 다른 안드로이드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어서 무감각한 것처럼 보일까요? 그리고 창조주의 명령을 거스르는 행동과 사람을 죽이는 행동 중에 과연 무엇이 우위에 있는 것일까요? 물론 영화 상에서는 창조주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헌번 1조 1항에 해당될 만큼 절대적으로 보입니다만 사실 조시를 죽이라고 명령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쩌면 러브 또한 명령의 한계를 벗어난 안드로이드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보이면서도 영화는 원작의 메시지를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이라 어떤 존재여야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처럼 살아가는 레플리컨트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끝없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도 데커드가 인간이냐 아니냐로 끝없는 토론이 벌어졌는데 감독판이 나오고 나서도 이 부분은 해결이 완전히 되지 않았죠.


어쩌면 인간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레플리컨트든 인간이든 수명은 정해져 있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가 중요하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이죠. 그래서 전작의 데커드와 이번 작품의 K 모두 인간으로서 살아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의식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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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극입니다. 홀로그램이 K에게 "당신 외로워 보이는군요" 라고 말하는 대사처럼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결국 죽어가는 K의 모습은 슬픕니다. 과연 K는 그런 마지막을 보내면서 어떤 생각을 들었을까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기뻤을까요? 아니면 분노가 생겼을까요? 이미 인간이 설정한 범주 밖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기에 어떤 감정을 느껴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가 갔으리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큰 감정 없이 몸을 누이는 K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이야기의 재미와 전달하는 메시지 그리고 비쥬얼적으로 전작의 분위기를 이어감과 동시에 감독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은 작품입니다. 차가우면서 담담한 비쥬얼은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적이면서 미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지역마다 다르게 꾸며진 도시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시각적 쾌감을 맘껏 느끼게 합니다. 오히려 아이맥스로 촬영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사운드도 좋았습니다. 이상하게 스코어 음악이라기보다는 사운드 효과에 가까운 BGM들이 사용된 느낌이었는데 꽤 다양한 음악들이 사용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자음이 강렬하게 드릴 때도 있었고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 나와도 영화의 몰입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확실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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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라이언 고슬링은 점점 자신의 필모를 확실히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는 생각이 듭니다. 라라랜드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다양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잘 골라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본인의 연기력을 폭발시켜서 상 하나 받을 만한 작품을 골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꽤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는 만큼 꽤 많은 여성 배우들이 나옵니다. 조이 역을 연기한 아나 디 아르마스를 비로하여 러브를 연기한 실비아 획스 그리고 경찰청장(?) 조시 역을 여긴 로빈 라이트, 스텔리네 박사에 카를라 주리까지 어찌보면 남성 캐릭터보다 여성 캐릭터가 더 많았고 여배우들도 눈에 많이 띄었던 만큼 다들 꽤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나 디 아르마스는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를 잘 보여주었고 실비아 획스는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질투라는 감정을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잘 연기했습니다. 로빈 라이트는 강인한 여성 경찰청장 역을 잘 연기하였고 카를라 주리는 사랑이 필요한 순수한 여성 캐릭터를 잘 연기했습니다. 사실 어느 캐릭터 하나라도 없으면 극의 재미가 현저히 떨어질 법 했는데 조율과 연기가 다들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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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캐스팅이 아니었던 자레드 레토는 그야말로 기업가의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필요하냐 필요없냐를 확실히 구분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하지만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어야만 하는 인물을 잘 보여주었죠. 사실 좀 불안한 인물은 위에서 얘기했던 인물들이 아니라 후속편에서도 등장하는 데커드였습니다.


물론 등장이 불가피하긴 했죠. 그런데 사실 연기하는 모습 자체가 강렬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작에서 30여년이 지났는데 강렬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렇다면 액션을 제외한 나머지 감정적인 장면이나 카리스마가 필요한 장면들에서 뭔가 임팩트를 줬어야 했는데 그런 부부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해리슨 포드도 많이 늙긴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평단의 호평이 대단합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구요. 하지만 역시 흥행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락성이 너무 없어요. 마치 최근 개봉한 남한산성 같은 느낌입니다. 묵직하고 단단하면서 담담하게 만들어진 그런 작품이에요. 유머러스한 장면도 거의 없고 액션도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전작을 보지 않았다면 보기 힘든 작품이죠. 그럼에도 추천은 합니다.



덧1. 전작과 이번 작품 사이에 세 편의 단편이 있습니다. 월레스에 대한 이야기와 대정전에 대한 사건을 알 수 있죠.







덧2. 과연 K는 죽었을까요?


덧3. 그 작은 나무인형으로도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월레스는 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는 걸 보면 상상 초월의 갑부인 것 같습니다.


덧4. 전작에서 종이접기 장면에서 보이던 유니콘은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등장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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