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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12 / 27 / 051]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의 신작 '1987'을 보고 왔습니다. 올해 탑에 속할 만한 작품이더군요. 1987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누구나 주인공이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구를 지켜라' '화이'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감독 스스로가 원했던 영화를 잘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실존 인물 실제 장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100% 팩트는 아닙니다. 그랬다면 다큐가 되었겠죠. 하지만 100% 팩트가 아닌 영화라는 것을 알고 보면서도 팩트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분위기는 대단했습니다.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죠. 특히 이처럼 등장인물이 많으면서 수시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영화에서 이런 몰입감을 느낀 것은 오랜만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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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등장인물을 통한 다양한 이야기는 이 영화의 최대 장점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김윤석(박처장)과 하정우(최검사)의 구도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화장을 시키라는 압박과 부검 후 화장하라는 최검사의 대립을 보여주죠. 그러면서 이야기를 언론에 흘리게 되고 중앙일보의 윤기자의 시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이렇게 검사와 언론 그리고 공권력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그들 내부에서도 공권력에 맞서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박종철 열사의 가족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울화통이 터지더군요. 그 울화통과 슬픔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극단적인 신파로 갈 수 있었음에도 정말 최대한 절제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강가에서 날라가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아들의 뼛가루를 움켜주며 울분을 토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아들의 영정 사진을 보며 오열을 하는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조카의 부검을 지켜보면서 슬픔을 참는 삼촌의 모습은 그리 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 비통하고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우리 옆의 삼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고 아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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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장면들을 감독은 최대한 담담하고 무겁게 담아냅니다. 그래서 초중반에는 코미디 요소도 거의 없죠. 분위기는 어둡고 연기는 무겁습니다. 유일하게 최검사가 가벼운 캐릭터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첫 등장 씬만 봐도 최검사 또한 가벼운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마치 느와르의 장면을 보듯이 무겁게 흘러가죠.


그렇게 중반을 넘어가면서 영화의 시점은 공권력과 권력 그리고 언론간의 대립에서 공권력과 국민의 대립으로 넘어옵니다. 감독에 갇혀 있는 해직기자(김의성)과 김정남(설경구)를 이어주는 한병용(유해진)이라는 감옥 간수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시점이 박뀌게 되죠. 그리고 한병용의 조카 연희(김태리)가 연관되면서 영화는 대중들의 모습 그리고 그 당시 권력에 맞섰던 대학생들의 시점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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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영화는 다양한 시점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잡하지 않습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더군요. 인물들간의 연결고리도 잘 이어가고 조율이 되어서 주조연이 따로 없었습니다. 모두가 주연이었죠. 마치 그 당시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고증은 잘 못된 부분을 찾는 게 빠를 만큼 그 당시 모습을 잘 살렸습니다. 의상 건물 노래 등 응답하라 시리즈에 버금가는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죠. 비단 그런 비쥬얼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들에 대한 부분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본 부분인데 실제 인물 관계도와 상당히 비슷한 인물 관계도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내외적으로 고증에 있어서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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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윤석은 능수능란하게 사투리를 쓰면서 카리스마 있는 처장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고 김윤석은 무거우면서 가벼운 캐릭터를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희준은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듯한데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기자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의외였던 것이 유해진이나 김의성 그리고 김종수, 오달수 같은 주조연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던 분들인데 유해진은 종종 보이는 코미디 연기를 여전히 잘하고 있지만 정극 연기에 가까운 모습을 굉장히 잘 보여주었습니다. 김의성이나 김종수 같은 경우 생각도 못 한 배역에서 생각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김종수의 강물 씬은 정말 이 영화의 씬 스틸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과연 그 장면에서 손수건이 필요없는 관객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달식이나 고창석 같은 경우는 거의 단역으로서 등장하는데 두 분의 연기도 평소 보지 못 했던 캐릭터여서 꽤 신선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김태리. 작년 아가씨 이후 거의 연타석 안타를 때리는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아가씨에서 껄렁껄렁하지만 아가씨를 연모해가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바뀌는 캐릭터를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김태리가 맡은 캐릭터야 말로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숨은 배우 강동원과 여진구. 어찌보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두 인물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연기하게 되었는데 사실 여진구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후반부 물고문 장면에서 상당히 놀랬네요. 고생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강동원은 정말 무슨 역을 맡아서 판타지라고 느껴질 만큼 비쥬얼이.....이한열 열사를 연기해서 이 영화의 유일한 러브 라인을 만들어 주는데 사실 이야기 자체는 판타지일 수 있겠지만 마지막 엔딩을 보면 이 캐릭터에 얼마나 고증을 신경썼는지 알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또 한 명의 숨겨진 배우 설경구까지 이 영화는 아마 영화의 소재와 던지는 메시지 때문에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배우들이 잘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를 열연해 주니 매 장면 하나하나가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연기로 까일만한 배우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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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오락성과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쓸데없은 신파도 없고 쓸데없는 장면도 없습니다. 휘몰아 치다가고 간간히 유머를 던져주어 숨 돌릴 틈도 주면서 관객들에게 울분과 슬픔 분노를 제대로 전달해 주고 있으니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는 탑에 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몇몇의 고문 장면과 폭력성 때문에 저학년 자녀들을 대동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흥행에 있어서 신과 함께를 따라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되구요. 하지만 흥행 자체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택시 운전사를 작품성으로는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니까요. 입소문이 굉장히 좋게 나서 장기 상영이 될 가능성이 많으리라 봅니다.


이로서 12월 한국 영화 기대작들을 모두 감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1987 > 강철비 > 신과 함께 순으로 만족하네요. 아마 추천을 하자면 저 순서대로 추천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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