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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11 / 01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의 신작 '팬텀 스레드'를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PTA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의 영화는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와 별개로 너무 불친절한 것을 단점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명배우의 은퇴작이기도 해서 과감히 극장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이 영화는 PTA 감독 작품 중에서는 가장 친절하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놀랬죠. 이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정적인 이야기 속에서 격정적인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정말 이 감독은 안 만드는 것이지 못 만다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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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는 디자이너인 레이놀즈(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고향집에 내려가면서 만나게 된 알마(빅키 크리엡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격정 멜로(?) 드라마입니다. PTA가 멜로 드라마라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이 또한 정상적인 멜로 드라마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PTA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그런 작품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야기의 구조가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인간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요소를 양념으로 좀 곁들였을 뿐이죠. 강한 자아의 세계 속에서 허덕이고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레이놀즈와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는 알마의 관계는 보는 관객들조차도 불안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쟤들 분명히 또 싸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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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반전이 없는 영화도 아닙니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녀는 어느날 패션쇼에서의 기력 소모 뒤 그녀에게 사랑을 표출하는 그를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즈음 독버섯을 이용하여 그를 병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간호하죠. 그 뒤 기력을 되찾은 그는 다시금 그녀에게 사랑을 표출합니다. 프러포즈를 하면서 말이죠.


이미 이 시점에서 이 둘의 관계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은 눈치를 채게 됩니다. 그가 독버섯을 먹고 기력을 다했을 때 어머니의 환상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손길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고 난 뒤에 그녀에게 사랑을 표출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놀라운 것은 영화의 엔딩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다시금 그에게 독버섯을 먹이려고 합니다. 그가 버터를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대량의 버터에 버섯을 구워 오믈렛(?)을 만들죠. 그런데 그는 그것이 독버섯인 것을 알면서도 먹습니다. 충격적이죠. 저걸 알면서도 먹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만큼 그녀를 사랑한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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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가 있기 전 영화 초반에는 다른 여성이 알마의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녀 또한 그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사라졌죠. 버티지 못 했거나 방법을 못 찾았을 겁니다. 그도 딱히 그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알마와 결혼 후 그는 새해 전야에 혼자서라도 춤을 추겠다면 파티장에 간 그녀를 기어이 찾으러 갑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도 변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장면은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렇듯 변하게 되는 그 둘의 관계는 비단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를 떠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라고 생각되는 초기의 관계도 변화를 시켰다고 봅니다. 디자이너(창조물)인 그는 그녀를 만나 모델(피조물)로 만들어주죠. 이 관계는 그녀가 그에게 독버섯을 먹이기 전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가 독버섯인 것을 알면서 먹는 순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조차도 변합니다. 이후에는 알마가 레이놀즈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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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를 통해 스스로 내부에 있었던 감정을 이끌어내게 되었고 그녀는 그러한 감정을 받아줍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굉장히 이상한 관계죠. 과연 이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제목인 팬텀 스레드라는 제목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 자체에 있는 더 복잡한 실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PTA 감독은 어마어마하게 표현을 해 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이거 고전영화인가?'라는 생각이었죠. 그 만큼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비쥬얼과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악이 현대 영화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배우들의 대사들은 현대 영화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전에 가깝다고 생각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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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영화에서도 OST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현대 음악의 힘을 빌리지는 않습니다. 모든 OST BGM이 클래식 즉, 오케스트라 위주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한 오케스트라는 영화의 스타일을 고전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고전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이 작품을 보고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그와 '링컨'에서 미국 대통령을 연기했던 그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자아에 사로잡혀 살고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어쩌면 그 저주를 풀어줄 대상을 찾고 있는 레이놀즈를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그의 은퇴작으로서 전현 손색없는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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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에 춤추러 간 알마를 찾기 위해 무대를 내려다 보던 그의 표정은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감정 중에서 가장 극대화된 연기였으며 최고의 하일라이트가 아니었나 생각되었죠. 알마를 연기한 빅키 크리엡스는 거의 처음 보게 된 배우인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의 연기대결에서 밀리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사랑을 원하고 질투를 표현하고 한 편으로는 그를 보살피는 그녀의 연기는 단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감정을 조금씩 그녀와 비슷하게 입체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주인공의 연기로 비판할 부분은 없었다고 생각되더군요. 매 장면에서 그와 그녀가 보여주는 연기는 긴장감에 가득 차 있어서 몰입감이 최고였습니다.


오히려 PTA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조금 낮추었다고 생각되지만 여전히 기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번에는 그의 이전 작품들보다 대중적으로 친절해진 만큼 추천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셰이프 오브 워터와 다른 듯 비슷한 그와 그녀의 사랑의 방식이 완벽히 개인의 취향로서 작용되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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