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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17 / 01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쓰리 빌보드'를 보고 왔습니다. 이로서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주목 받았던 작품을 2/3정도 감상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는군요. '더 포스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팬텀 스레드'에 이어 감상한 '쓰리 빌보드'는 가장 묵직한 분위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디서 누가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 모르는 압박감이 대단했던 작품이었죠.


이야기만 보면 복수극이 생각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죠. 끔찍한 사건으로 딸을 잃은 주인공이 경찰에 항의하는 듯이 새긴 세 개의 광고판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니콜 키드먼 주연의 '도그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코엔 형제의 '파고'가 생각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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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예상'을 단 하나도 일치시키지 않습니다. 정말 모든 인물이 변수이고 모든 상황이 랜덤이더군요. 그러한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은 대단했습니다. 관객들을 옥죄어서 콜라조차 한 모금 마시지 못 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되더군요. 이 영화의 각본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런 심각하면서도 예측 불허의 긴장감 속에서 코미디 요소를 적절하게 넣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히 관객들의 긴장 완화를 위한 장치로 넣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조차도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툭툭 나오니 그렇게 과한 유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식피식 웃게 되더군요. 도대체 이 영화에서 예측 가능한 일이란 것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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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난해한 점은 그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이 영화가 무슨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인가를 관객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최근에 감상한 팬텀 스레드가 더 친절한 영화였다고 생각되었죠. 이 영화는 희노애락과 용서와 구원 그리고 복수라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죠. 어찌보면 이 영화는 일상극이자 시트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들어 있는 영화였죠. 복수로 시작된 영화의 도입을 거쳐 대립과 분노로 이어지는 감정들 사이에서 사랑을 얘기하고 있고 종반으로 다다를 수록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가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아니 어떻게 짧다면 짧은 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이런 다양한 감정들을 이토록 독특하게 보여줄 수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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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확실한 것은 저런 다양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하나의 감정에 치우쳐서 살게 되면 어떤 꼴이 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주인공은 복수에 사로잡혀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제끼고 있고 가족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병들어 죽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로 권총 자살을 하는 경찰서장도 있습니다.


시종일관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폭력경찰은 아무 이유없이 백인을 폭행하죠. 그런데 이런 각각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경찰서장의 편지 세 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위아 더 월드처럼 말이죠. 이 영화에서 그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인간의 감정은 결국 '사랑'이었죠. '연민'일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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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종반으로 가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주인공과 폭력경찰은 술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인물의 뒤를 쫓아갑니다. 사실 그 사람은 주인공의 딸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고 확실히 못 박아 두지만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다른 사건의 용의자이자 범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죠.


그래서 그를 쫓아가기 위해 출발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가면서 정하자고 합니다. 그 뒤는 아무도 모르죠. 초반과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관계와 그들의 감정이 또 다른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오픈 엔딩으로서 남겨둡니다. 그래서 묘하게 여운이 남죠.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굳이 그들이 샷건을 가져가는 장면을 대놓고 보여줬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는 총기 사건들에 대한 비판적 요소로서 넣었을 수도 있지만 조금은 은유적으로 연출하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둘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죠. 총을 가져가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넣음으로써 마지막 장면에 대한 여운이 조금은 상쇄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재미라....재밌는 영화는 분명 아닙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영화 속 분위기 등 무엇하나 대중성과 거리가 멉니다. 블랙 코미디로서 유머가 많은 것도 아니고 메시지를 던지면서 친절한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죠. 하지만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탄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엄청난 연기와 혼돈 속에서 절제를 찾아가는 캐릭터들의 감정을 보는 맛은 쫄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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