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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의 정의_[캐비닛]

산다는건 2017. 2. 9. 21:42





'캐비닛'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입니다. 13호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신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들려주고 있죠.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소재와 달리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사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과연 누가 평범하고 누가 평범하지 않은가? 에 대해서 저절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오히려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여나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미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은 뒤에서 험담을 하고 고문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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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최고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평범했던 그는 평범하지 않은 캐비닛을 건드림으로 인해서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본인의 목숨조차 위험해지는 상황에 다다릅니다. 심지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절단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죠.


결국 주인공은 썩어서 버려진 새깨손가락처럼 문명 사회를 떠납니다. 캐비닛에 들어 있던 자료들을 가지고 말이죠. 그리고 자타의로 떠나게 된 무인도에서 나름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합니다. 비록 각종 경계망을 설치해 놓고 살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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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그렇게 마치 숨기듯이 캐비닛의 자료를 가지고 혼자 살아가게 되는 결말을 보면서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현대 사회의 양육강식의 세계처럼 다수이기에 '평범'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에 의해 핍박 받고 따돌림을 받아야만 하는 '소수'는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주인공도 서로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수'의 자료가 들어 있는 캐비닛을 들고 은둔 생활을 택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키메라에 대한 자료로 인해 본인이 고문을 당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됨에 따라 소수였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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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이 이야기는 가공의 신비의 인물들을 통해서 학교, 사회,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육체적 폭행 뿐만이 아닌) 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은 재밌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이용한 덕분에 끊어 읽기가 쉽고 몰입도 잘 됩니다. 각 이야기마다 시사하는 바도 있고 그 시사하는 바에 따라서 여운이 남는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끝까지 재미를 잃지 않았던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후반부에 너무 급하게 마무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의 고문과 그 이후의 상황은 사실 갑작스레 일어나는 일들이라 중간에 다른 이야기가 빠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무인도에 잠적해야 할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도 많이 생략이 된 듯하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이야기에서 오는 재미는 무시할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도 지루하지 않았고 정말 오랜만에 쉴 틈 없이 몰아서 읽었던 책이라 조심스레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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