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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04 / 14 / 015]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윤석 감독 및 주연의 '미성년'을 보고 왔습니다. 재밌더군요. 왜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감독들과 불화설이 소문처럼 들렸는지도 이해가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감독과의 불화가 잘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한 명의 배우가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죠.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대원(김윤석)은 미희(김소진)과 불륜의 관계에 있고 그 둘 사이에는 아이가 있죠. 그리고 그걸 대원의 딸 주리(김혜준)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가 알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서 영화는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소재가 불륜이라고 해서 영화의 분위기도 끈적하거나 칙칙하지 않습니다. 아니 칙칙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는 않다고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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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주인공은 주리와 윤아입니다. 이 영화는 '성인'인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을 '미성년'인 두 소녀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 선생님(김희원)의 말마따나 전혀 접점이 없었던 두 소녀가 각각의 부모의 접점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이어 나가는 과정을 들려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두 소녀의 성장기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죠. 불륜은 그 소녀들이 성장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장치구요.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어떤 작품에서도 보인 적이 없는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찌질한 연기를 본인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아내한테 치이고 불륜을 저지른 상대방한테도 치이고 10대의 시골 학생들에게도 치이고 심지어 왠 시골 할머니한테도 치입니다. 그야말로 시종일관 치이다가 비굴하게 빌기도 하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카리스마라고는 단 1도 느껴지지 않는 이런 캐릭터를 본인이 연출한 작품에서 연기했다는 것은 꽤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본인 스스로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직책이 배우로서의 직책보다 더 크게 작용을 했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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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그렇게 캐릭터 파괴를 보여준 김윤석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는 다들 대단합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감독을 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조연 상관없이 적재적소에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줌과 동시에 격정 로맨스도 아니고 포복절도 코미디도 아닌 영화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큰 장점입니다.
SKY캐슬 이후 오랜만에 보게 된 염정아의 연기는 캐슬 때의 카리스마는 없어지고 일상 생활에서 불륜을 당한 엄마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캐슬 때보다도 더 좋았다고 생각되더군요. 한 명의 배우로서 젊었을 때보다 연기의 질이 점점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캐슬보다 이 작품을 먼저 찍었겠지만 개봉이 뒤니 대충 맞춰주시길…) 감정 연기의 전달이 상당히 능숙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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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와 더불어 또 다른 감정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소진의 연기는 차분하면서 감정을 전달하는 염정아와 달리 굉장히 격정적입니다. 딸과의 대화에서도 감정을 극도로 올리고 있고 조산 후 입원해 있을 때는 조울증에 버금가는 감정의 격차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불륜남에게 차이고 소중히 여기던 아이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인 한 명의 중년 여성의 연기를 잘 보여주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배우는 역시 두 소녀를 연기한 김혜준과 박세진입니다. 김혜준(주리)과 박세진(윤아) 모두 이제 주연을 맡은 거의 신인 여배우이고 박세진의 경우는 아예 이번 작품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윤석 감독이 잘 이끌어줘서 인지는 몰라도 데뷔작에서 주연이면서 이런 연기를 펼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거의 투톱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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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두 배우 모두 성공적인 주연 데뷔라고 생각됩니다. 이후로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펼치지 모르지만 작년의 마녀의 김다미와는 다른 임팩트를 남겼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은 두 배우가 이번이 첫 주연작이고 한 명은 데뷔작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 할 것 같거든요. 감정의 전달이나 대사의 발성이나 몸짓의 흐름이 전혀 신인답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어요.
그 만큼 이 작품의 배우들의 연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였습니다. 물론 영화의 연출도 좋았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점이 꽤 나누어져 있음에도 난잡하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일 수 있는 구도를 잘 잡았다고도 생각되었죠. 그리고 상황에 따라 롱테이크를 적절히 이용해서 배우와 관객들이 감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카메라 앵글을 잡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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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영화가 재밌어요. 소재와 다르게 코믹한 요소들도 꽤 있고 그런 장면에서의 관객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엔딩에서의 모호함만 뒤로 한다면 이야기의 단순함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연출력으로 영화의 몰입도도 좋은 편입니다. 맛깔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김윤석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개봉시기가 좀 아쉽네요. 상영관도 별로 없구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이 2주가 남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이 개봉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미성년 자체도 대박삘은 아니기 때문에 극장에서도 쉽사리 많은 상영관에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입소문이 좋게 나면야 좋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간상으로 대박 흥행을 할 여유가 없어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