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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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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이라고 하면 사실 드라마 쪽에서는 상당히 입지를 가진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모'부터 시작해서 '패션 70s'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 하츠'까지 여러모로 다양한 작품을 만든 감독이고 시청률도 상당히 잘 나온 작품들이 많죠. 특히 '다모'는 그 당시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했었고 많은 유행어를 낳을 정도로 대박 친 작품인데 그렇게 드라마에서 입지를 굳힌 감독이 영화 연출을 하겠다고 작품을 들고 나왔을 때 조금은 불만이었습니다. 그냥 드라마만 하기를 바랬거든요.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기대감은 꽤 컸습니다. 예고편도 그럴싸했었고 '다모'에서 보여주었던 사극의 형태를 가지고 온다면 영화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왠걸? 시사회 반응이 완전 혹평에 혹평이 이어지는 바람에 도저히 볼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 보고 지나갈 줄 알았죠...결론은 보게 되었지만요...


영화는 정유역변이라는 정조 암살 사건을 기초로 만든 팩션입니다. 팩션이라고 해도 허구가 더 많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정순왕후가 정조를 (암살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암살하려는 24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성공하지 못 하죠. 역린은 '거스릴 역'에 '비늘 린'이 합쳐진 임금님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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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습니다. 언제나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살아야 했던 정조가 왕이 되고 1년이 된 시점에서 벌어지는 정조 암살극은 주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영화화하기에도 좋았고 액션도 적절히 넣어서 충분히 스타일리쉬한 영화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 이야기가 아니라 '부' 이야기들에 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드라마의 축소판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영화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의 과거사를 하나하나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국내 영화 중에서 이렇게 많은 개인사를 들려주는 영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과거사를 들려주고 있는데 정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개인의 과거사를 하나하나 들려주는 동안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흥미를 가지고 몰입이 되어야 할 '주' 이야기는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는 액션 영화도 아니고 정치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야기에 좀 더 집중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주' 이야기에 말이죠. 지금의 작품과 같은 스타일은 미드 24시 같은 곳에서나 사용할 법한 연출이죠. 24부작으로 만들어서 배신과 음모를 매 회마다 흘려보내 떡밥과 시청자들의 뒷통수를 노리는 그런 드라마에나 적절합니다. 고작 2시간 반도 안 되는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에는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다시피 이 영화의 기초는 '역사적 사건'에 있고 그러한 사건의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재밌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지루해질 수 밖에 없거든요. 특히나 요즘 상영시간이 2시간 안팎인 점을 본다면 주 이야기를 빠듯하게 진행하기에도 모자랄 판인데 개개인의 과거사를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니 몰입이 안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 이야기'에 대한 가지치기가 분명히 필요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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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부족하더라도 배우들의 연기가 된다면 극에 몰입이 되기도 합니다. 앞서 적었던 '표적'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도 도와주지를 않습니다. 정조 역을 맡은 현빈은 근엄함을 위해서 한껏 목소리를 내리 깔지만 너무 톤이 일정합니다. 이 작품에서 현빈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광해에서 이병헌이 얼마나 연기를 잘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적'에 이어 다시금 등장한 김성령의 연기도 뭔가 애매합니다. 정조의 어미로서 아들을 지키고 정순왕후를 죽이려고 하지만 어디에서도 절박함이나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가운 도시의 강력계 형사가 더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살수로 등장하는 조정석이나 그런 조정석을 키운 조재현 그리고 갑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정재영의 연기는 나은 편입니다. 그들의 연기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극에 몰입이 되는 느낌이죠.

 

그런데 가장 총체적 난국은 정순왕후를 연기를 한지민입니다. 한지민은 조연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비중으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주연에 가까운데 스크린에서 보는 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상합니다. 이게 '연기를 못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조선명탐정'에서 보여준 팜므파탈 연기는 나름 어울렸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팜므파탈도 아니고 그냥 악역인데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감독이 애초부터 캐스팅을 잘 못 했거나 연기 지도를 잘 못 한 느낌입니다. 사실 연기 자체만 본다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지민이라는 배우와 캐릭터가 맞지가 않는 느낌이죠. 거기다가 감독이 캐릭터 자체도 좀 잘 못 잡은 듯한 느낌이구요. 여튼 가장 문제가 많은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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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살수가 등장하고 암살이 목적인 영화에서 짧게나마 나오는 액션 장면들도 전혀 재밌지가 않습니다.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다이하드 스타일의 난장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암살이라고 해 놓고 군대 수준의 병사들을 풀어서 처들어 가지를 않나 정조의 스나이퍼 실력으로 모조리 처리하는 장면이나 뭔가 참 애매모호합니다.


이럴 바에야 아예 군대를 이용한 대규모 전투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살수를 이용한 긴장감 넘치는 암살 장면을 넣든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감독은 액션조차도 본인의 전 작품인 '다모'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의 비쥬얼은 꽤 좋은 편이거든요. 화면에 비춰지는 배우들의 모습도 멋있게들 나오고 조명도 꽤 잘 사용하고 있는 것 같고 풍경도 잘 잡아주고 있는데 그것들과 조합을 이루어야 할 다른 부분이 모자르니 비쥬얼조차도 죽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영화는 너무 급하게 나온 느낌입니다. 아마 편집에서 서두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개봉 시기를 앞당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왜냐면 5월부터는 이제 블럭버스터 영화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으니 차라리 미리 개봉해서 관객들을 좀 모으자는 계획이었을 듯 싶기도 한데 단순히 제 생각일 뿐이니 추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전체적으로 참 아쉬운 영화입니다. 오히려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무삭제 감독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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