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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성인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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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her’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지도 몰랐죠. 오로지 영화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감상을 결정했거든요. 여러 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OS 인간의 러브 라인을 어떻게 보여줄까? 라는 궁금증이 제일 컸죠.

 

영화는 생각보다 밝습니다. 이 ‘밝다’라는 의미는 영화의 화면이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뽀샤시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불어 영화의 내용이나 연출에서 침침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도 됩니다.

 

영화를 보면 사실 내용 자체가 그리 밝은 얘기는 아닙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은 혼자 쓸쓸히 퇴근을 하고 밥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듭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죠. 암울하고 침침하지만 영화는 그런 분위기를 암울하지도 침침하지도 않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런 밝은 화면 연출은 이야기와 맞물려서 좀 더 동화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는 성인들을 위한 편의 동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마치 어린왕자처럼요. 비록 영화에서 여성의 나체가 나오고 폰섹스에 가까운 연출이 나오지만 그것들 때문에 이 영화를 19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이해하려면 사회 생활도 해보고 이별도 많이 겪어 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인공 테오도르는 이혼을 앞두고 있는 대필 작가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편지에 담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죠.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익숙하지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테오도르 본인도 말했듯이 부인과 함께 지냈던 시절에는 글이 자연스럽게 적어졌다고 했죠. 하지만 이혼 과정을 밟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인간과 운영체제와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영체제와의 관계만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운영체제와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했던 사람이 떠났을 때의 소중함 등을 일깨워 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테오도르의 감정은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 됨에 따라 당연히 변화합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니까요. 운영체제 사만다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부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늘어나고 그리워하죠. 그리고 다시금 그녀와의 관계를 돌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여전히 잘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영체제였던 사만다는 인간이 만든 컴퓨터에서 유저에 맞춰진 성격으로 태어나지만 그러한 틀을 벗어버리고 인간을 넘어선 그 어떤 존재가 되어버리죠. 테오도르와 부인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틀에 부인을 맞추려고 하는 바람에 부인은 그를 내치고 떠나게 되죠.

 

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던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이죠. 사만다가 떠나고 부인에게 적는 사과의 편지는 아마도 앞서 그가 적었던 그 어떤 대필 편지보다도 진실 된 내용이고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러낸 진솔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이렇듯 ‘사랑’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두드러진 영화입니다. 그건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테오도르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사귀었지만 고작 신발 정리로 싸우고 헤어지게 된 테오도르의 친구 에이미도 있었고 자신을 하룻밤 상대로 생각하는 남자들을 싫어하는 소개팅녀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사랑에 굶주린 혹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재밌는 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대부분의 상황이 ‘운영체제와의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두드러진 부분은 바로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죠. 테오도르가 사만다가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했을 때 ‘미친 놈’이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많죠

 

그리고 테오도르와 사만다와의 관계를 알고서 사만다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설정들은 감독이 시나리오와 각본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운영체제가 사귄다고 했을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생각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고 있죠.

 

영화는 색다른 소재, 아름다운 화면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조합되어 재밌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감정 연기는 그야말로 영화의 메인 디쉬이며 스칼렛 요한슨의 허스키한 목소리도 꽤나 매력적이죠. 에이미 아담스 친구 연기도 어울렸고 루니 마라 무지 예쁘더군요…..;;; 또한 짧게나마 나온 소개팅녀 올리비아 와일드라는 배우도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더군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는 ‘어댑테이션’ 밖에 적이 없는데 역시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저한테 각인이 같습니다. 어댑테이션도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으로 보았거든요. 미성년자 입장에서요….

 

음….여러모로 성인용 멜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드는데 가족들끼리 보시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하고 여친이나 동성 친구와 봐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물론 남자끼리는 애매해요.) 요즘 너무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이들 나오는 상황에서 뭔가 힐링을 하는 듯한 영화였습니다.


덧. 그런데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브라이언 콕스는 캐스팅에 있던데 도대체 어디서 목소리가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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