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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세계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진정한 히어로의 이야기"



전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87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고 왔습니다. 좀 더 빨리 봤어야 했는데 어떤 영화를 보려고만 하면 묘하게 계획이 틀어지는 이 생활은 여전히 바뀌지가 않는군요. 다행인 것은 오스카 시상식 버프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예매율이 높아서 상영관을 고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 영화 시작할 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야. 이거 실화냐?"라고 묻는 관객들이 있더군요. 뭐랄까. 좀 더 영화가 시작하면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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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영화는 앨런 튜링이 자신을 조사하던 형사와 대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는 액자구조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서) 현재 시점에서의 앨런 튜링은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다 밝히고자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인 이니그마를 해석하는 작업에 고용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이런 사실에 기반한 영화는 항상 그렇지만 왠만하면 관객들이 '결말'에 대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실 기반의 영화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과정이 다른 영화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결말을 아는 상황에서 그 과정을 재미없게 만들어 버리면 영화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다른 상도 아니고 '각색상'을 받았기 때문이죠. 원작을 꽤나 괜찮게 각색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을 수상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심지어 다른 상들은 하나도 못 받았으니까요.) 각색상을 받은 것을 보면 이야기 자체는 꽤 재밌게 만들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꽤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그런 기대는 크게 배신을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이름을 듣게 된 '모튼 틸덤'이라는 감독은 이야기의 강약 조절을 꽤나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지루할 틈에 사건을 발생시키고 그런 사건을 다른 사건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잘 조율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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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자연스런 이야기의 흐름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대 장점 중에 하나인데 '잘생김'을 연기하다는 베니틱드 컴퍼배치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조차도 하기가 애매한 것이 실제 앨런 튜링을 본 적이 없기에 과연 그의 캐릭터가 정말로 앨런 튜링과 비슷한지 알 수가 없죠. 하다못해 최근 작품인 '사랑에 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을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경우 최소한 스티븐 호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고 알고 있기에 비교가 가능하지만 이미 사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앨런 튜닝의 경우 그런 부분이 불가능했죠.

그래서 앨런 튜링이란 인물을 단순히 책으로만 보고 연기를 했을 베네딕트 컴퍼배치의 모습을 그의 가족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더군요. 정말로 비슷하다고 생각할까요? 솔직히 실제 앨런 튜링과의 외모의 싱크로율은 전혀 안 맞거든요.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로 극에 몰입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본다면 정말 그들의 연기는 꽤 잘 어울립니다. 자연스럽고 과장되지 않으며 적절히 절제가 되어 있는 연기를 보여주죠. 베네딕트 컴퍼배치 뿐만이 아니라 키이라 나이틀리의 연기도 괜찮았고 조연으로 나오는 매튜 굿, 로리 키니어, 엘렌 리치의 연기도 조합이 잘 되어서 배우들의 연기로 혹평을 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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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니그마의 해석이라는 큰 틀에서 앨런 튜링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주인공은 앨런 튜링입니다. 그리고 이니그마의 해석을 완료한 후 앨런 튜링의 개인사에 대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어찌 보면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튜링 머신'이라 불리는 이후 '컴퓨터'라 불리는 기계를 최초로 만들고 (사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1400만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2차 세계 대전을 2년을 앞당긴 인물을 고작 '게이'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받도록 했으며 결국 자살로 몰고가게 되는 그 당시 사회 배경에 대해서 암묵적인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그가 아무런 국가의 제재 없이 생활을 했더라면 컴퓨터 시대가 좀 더 빨리 도래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인류의 발전도 한층 빨라졌겠죠. 아니면 차라리 감옥에 갔다가 나오는 것이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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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밌다'라고 무조건 추천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고 있고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만큼 몰입도도 좋습니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도 없어서 가족용으로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극장을 나오면서 느낀 반응으로는 1:5 정도로 굉장히 재미없는 반응도 보았으니 데이트용이나 친구와 감상할 때는 신중한 선택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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