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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함의 어려움"


닐 블룸캠프 감독의 신작 '채피'를 보고 왔습니다. 데뷔작인 '디스트릭트9'으로 일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감독의 자리에 오른 닐 감독은 이번 작품이 (제가 알기로는) 3번째 작품인데 사실 전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엘리시움'의 경우 반응이 참 안 좋았었죠. 물론 제 기준에서도 영화가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말이죠.


여튼 어쨌든 2번째 작품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데뷔작이 워낙에 대히트를 쳤으니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3번째 작품인 '채피'의 예고편이 나왔을 때는 조금 기대를 했습니다. 코미디 요소가 섞인 SF 로봇물이라고 홍보를 해서 개인적으로는 전작들과 다른 노선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후 반응은 엘리시움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보고 나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감상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엘리시움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디스트릭트9에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더군요. 우선 전체적인 설정이 워낙에 익숙합니다. 고전으로 치면 블레이드 러너부터 시작해서 A.I., 아이로봇이나 조니5 파괴작전도 생각나고 감독의 데뷔작인 디스트릭트9의 느낌도 나면서 트랜센던스의 느낌도 나더군요.


그래서 디스트릭트9처럼 이야기에서 뭔가 신선함을 느끼려고 하면 100% 후회합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언급한 영화들의 클리셰 덩어리로 이루어진 영화의 구성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잘 버무려져 있어서 익숙한 설정들의 나열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코미디'라는 요소를 감독이 넣으려고 했던 만큼 후반을 제외하고는 분위기가 꽤나 밝아서 전체적인 스타일은 그렇게 진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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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영화의 구성을 잘 버무렸으면 캐릭터들을 잘 살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 했습니다.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은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는 것과 그들의 심정의 변화가 정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캐릭터들의 심적인 변화로 인해 행동이 달라지는 과정은 뭔가 뜬금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 부분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캐릭터가 양아치(?) 3인방입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인물들로 등장을 하는데 경찰 로봇을 제압하고자 주인공을 납치한 후 그에게서 '채피'를 얻은 직후부터 전혀 나쁜 놈이라는 느낌을 풍기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코미디죠.


생전 처음보는 로봇이 아무리 말을 못하고 애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과연 '모성애'가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양아치 3인방 중 (혹은 영화 전체에서 거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로봇을 보자마자 모성애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양아치들의 두목으로 나오는 닌자는 중후반까지 그래도 나쁜놈 캐릭터를 잘 유지하나 싶더니 후반에는 뜬금없이 순애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게다가 채피라는 로봇의 캐릭터 자체도 어린애로 시작했으면 뭔가 점점 성인이라는 느낌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지식만 쌓이는 어린애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런 어린애 캐릭터로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채리라는 캐릭터는 그 성향이 우왕좌왕하죠. 감독의 수작이라고 생각되는 디스트릭트9의 경우 주인공 캐릭터를 비롯하여 등장 인물들의 심경의 변화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몰입이 잘 되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은 등장 인물들의 변화가 전달이 되지를 않으니 영화의 이야기에도 몰입이 잘 안 됩니다.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흘러가는데 여전히 '흠~~~'이라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아요. 만약 인물들의 심경의 변화가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영화가 훨씬 재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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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건질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닐 블룸캠프 감독은 디스트릭트9부터 무기와 메카닉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했는데 엘리시움에서도 그러한 정체성(?)은 변함이 없었죠.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공 채피를 비롯하여 무기 등의 디자인 상당히 있어(?) 보입니다.


뭐랄까. 굳이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구닥다리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분명 미래에 나올 법한 무기인데 디자인은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심플하지도 않은 것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은 디자인이라 생각되더군요.


이러한 부분은 이후 작품에서도 기대되는 부분인데 분명 닐 블룸캠프 감독의 정체성이 제대로 반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러한 감독의 정체성을 무기 및 메카닉 디자인 뿐만이 아니라 이야기와 캐릭터에도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이야기나 액션이나 등급이나 어느 부분을 따져도 굳이 같이 볼 사람을 따져가며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보시고 싶으신 분하고 같이 보시면 될 듯 한데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라 (그렇다고 망작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최근 뛰어난 작품들이 대거 나온 게 문제였을지도요...) 속 편하게 혼자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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