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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결말에 대한 누구도 잘 알지 못 하는 과정을 들려주는 이야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보고 왔습니다. 최근 약간 지진부진한 이준익 감독이기에 감독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습니다만 송강호와 함께 최근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유아인이 투톱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뭔가 기대감이 증폭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래서 '믿고 보는' 타이틀을 단 배우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사실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워낙에 많이 전달이 되었기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비극이라는 것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주 연령대를 생각해 본다면 기본 틀을 모르고 본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죠. 자세히 알든 간단히 알든 기본적인 골격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많은 이야기를 과연 얼마나 재밌게 들려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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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대감을 가지 본 '사도'의 이야기는 기대감은 충분히 충족시켜 줍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제외하고 '가족사'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와 자식 등 이 영화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간의 '갈등'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묘하게 현대적인 느낌도 들죠. 물론 영화의 이야기가 좀 더 극단적이기는 합니다만.


영화는 사도세자가 '왜' 사도세자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영조와 사도가 '어떻게' 그런 관계가 되었는지 '왜' 그런 관계가 됐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영조의 욕심이 너무 크게 보여진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은데 이 또한 현 사회에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려고 하는 부모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봅니다.


여튼 영조 스스로도 말한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 '사도'에 대한 욕심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사도 스스로는 뭔가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시작은 어떻게 보면 미미하다고 볼 수 있고 별 것 아닌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미미한 시작이 결과적으로 비극으로 될 줄은 아마 영조나 사도나 본인들 스스로는 생각도 못 했으리라 봅니다.


스크린을 통해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정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예고편을 통해서 느낀 부분은 동적인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화는 굉장히 정적입니다. 그래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감독은 관객들이 당연히 지루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교차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흥미'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사이가 좋았던 시점에서 시작하여 점점 사이가 나빠지는 과거의 시점과 아비를 죽이려고까지 하는 시작부터 결국 비극으로 이어지는 현재 시점의 교차 편집은 흥미롭습니다. 마치 메멘토를 보는 듯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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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좀 더 살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믿고 보는 송강호의 연기는 뭐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표정 몸짓 말투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연기는 관객들의 그의 모습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배우가 유아인이죠.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긴 합니다만 밀회나 완득이를 제외하고는 뭔가 눈에 띄는 캐릭터가 없다가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하면서 잠재력이 더 터졌다고 생각되는 유아인의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 잠재력의 모든 것을 터트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연기는 송강호에 꿀리지 않습니다.


착해 빠졌던 젊은 사도부터 시작해서 미쳐가는 사도까지 아마도 지금까지 그가 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합쳐진 듯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제 군대를 갈려고 그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스스로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송강호와 투톱이 아니라 유아인의 원톱이라는 느낌도 들 정도죠.


그 외의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특히 사도의 어린 시절과 정조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들은 워낙에 귀여워서 아역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쌍함의 극치를 달리게 되더군요. 사실 가족사에서 신파라는 부분은 제외할 수가 없다고 보지만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구슬프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역들이 울 때입니다. 특히 어린 정조가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너무 불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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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올해 한국 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기를 싹 빼고 만든 만큼 정통 사극의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묵직하고 진지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 감독의 힘은 이준익 감독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라면 에필로그 부분인데 개인적으로 너무 깁니다. 그리고 그다지 필요없는 분장을 해서 어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계곡에서 영조와 정조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정조의 왕위 계승 장면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며 끝냈으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마지막에 너무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과한 연출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호불호가 꽤 갈릴 것 같습니다.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들도 많을 것 같고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관객들도 있을 것 같거든요. 저도 예고편만으로는 극적인 연출이 많으리라 생각해서 흥행이 꽤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정적인 영화라서 대박이라 할 만한 흥행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일단 추천을 날립니다. 사극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보장하며 영화적으로 꽤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꽤 후회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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