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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엔 현실이 이길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



정의감에 불타는 FBI 요원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야전에서 뛰며 팀장을 맡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죠.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범죄자들을 없애고 범법 행위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그녀의 눈빛은 굉장히 불타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CIA에서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며 살인 행위를 일삼는 범죄 집단을 잡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녀는 단숨에 이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 팀은 숨기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누군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인물은 항상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죠. 그녀에게 작전조차 알려주지 않고 현장에 투입시킨 그 팀의 팀장 맷은 범법 행위로 미션을 실행하는 팀에 대해 반발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하려고 데려왔다고 얘기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배우라고 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이 얘기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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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막바지에 케이트는 CIA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범법을 행하는지를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흥분을 숨기지 못 하고 대들지만 맷은 그런 그녀를 단번에 제압하고 그녀에게 얘기해 줍니다. 왜 그래야 하며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요. 당연히 그녀는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녀의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사실 그녀가 생각했던 '다른 현실'에 대해서 영화 초반에 던져준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앞에서 말한 '누군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인물'인 알레한드로입니다. 그는 처음 본 그녀에게 '시계의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것을 보라'고 하죠. 여기서 '시계구조'는 그녀가 생각했던 '다른 현실'이고 '시계바늘'은 대외적으로 그들이 실행하는 임무를 가리키는 것일 겁니다. 즉, 이미 그녀는 스스로가 어떤 임무에 투입되는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죠. 차라리 이 때 그녀가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영화의 마지막처럼 어쩔 수 없이 현실에 '굴복'하게 되는 일이 생겼을까요?


게다가 '시계구조'에서도 가장 핵심(가장 더러운)에 속한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위해서 팀에 들어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그가 왜 그녀에게 그런 복선에 해당하는 대사를 날린 것일까요? 어쩌면 그는 자신이 해야 하는 더러운 일에 대해서 그녀가 알고 이해해 주기를 바랬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를 막아주기를 기대했던 걸까요?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이기도 한 대사인데 감독이 관객들을 위해서 너무 큰 단서를 던져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대사였습니다. 왠만하면 이 대사를 듣고 영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전작인 프리즈너스보다도 영화가 쉽게 느껴졌던 것은 관객을 위해서 이렇게 던져주는 '포인트'가 꽤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이해는 쉬워졌지만 영화도 쉬워져서 조금은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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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프리즈너스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지금은 국내 영화에서도 많이 보이는 구조인 '모호한 선악의 구분'을 프리즈너스에 이어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일체의 코미디 요소를 넣지 않고 과장된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스타일은 지극히 묵직합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도 하죠. 하지만 지루할 틈은 없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전해지는 긴장감은 관객들이 지루할 수 없게 만들거든요. 하지만 그 만큼 피곤도 가중됩니다.


게다가 영화 속 캐릭터들조차도 매사 진지합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케이트는 시종일관 '어떻게 하면 적들을 부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고 알레한드로는 대사조차도 거의 없는데 표정조차도 굳어 있어서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팀장인 맷은 나름 말도 많고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뭐 약간의 웃기려고 하는 대사도 날리죠. 그나마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굉장히 돋보이기도 한 영화인데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인상적인 여전사 역할을 한 에밀리 블런트는 이번에도 굉장히 강인한 여성의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현실'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레한드로의 연기를 맡은 베네치오 델 토로는 뭐 다른 말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적은 대사 일관된 표정만으로 씬 스틸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맷을 연기한 조슈 브롤린은 에베레스트에 이어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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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재밌지만 추천하기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무겁고 어둡고 더럽고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며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쪼아옵니다. 굳이 선정적인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음에도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이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누구와 같이 보라고 하기는 힘들 듯 하군요.


하지만 놓치기에는 굉장히 아까운 작품입니다. 상영관 수도 적고 상영 시간도 애매해서 보시기 힘드시겠지만 시간을 내서라도 혼자서라도 가서 보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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