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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영화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작품"



알렉한드로 곤잘레츠 아냐리투 감독의 신작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보고 왔습니다. 버드맨에서 압도적인 연출과 작가주의 영화를 보여주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영상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굉장히 궁금했죠. 하지만 역시나 그렇듯 절대적으로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를 같이 보려는 사람이 없었죠. 영화가 길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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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19세기의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가죽 수출이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주인공인 휴 글래스는 록키 마운틴 모피회사 소속으로 미주리강 탐사대원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복귀 도중 회색곰에게 습격당해 낙오된 후 혼자 4000km(400km아님) 살아돌아온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료에게 아들을 살해당하고 추격해오는 원주민을 피해 복수를 실행하는 이야기가 큰 뼈대입니다.


사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 글래스가 돌아오는 과정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죠. "끝난 줄 알았는데 한 번 들어간다"라고요. 진짜 엄청납니다. 개고생을 그런 개고생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글래스가 겪은 일들은 판타지에 가까습니다. 사실 회색곰에게 습격당해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이미 판타지라고 생각될 정도이지만요.


여튼 영화는 이야기에서 어려운 부분은 없습니다. 어찌보면 생존기에 가까운 영화의 내용은 '얼라이브'나 '127시간' 등 여타의 생존기 영화들과 비슷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역시나 이 작품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다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연출과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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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화 내내 눈 한 번 깜박일 시간도 음료수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주지 않을 정도로 관객을 압박한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하면서 관객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유머러스한 장면도 대사도 없고 심지어 휴 글래스는 곰에게 습격당한 이후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대사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가는데 근 몇년 동안 본 영화 중에서 이 정도로 압박을 준 영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등 정도입니다. 아마 올해 보게 될 그 어떤 영화도 따라오지 못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촬영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자면 '칠드런 오브 맨'에서 굉장한 롱테이크 장면을 보여준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그래비티'에서도 어마어마한 촬영을 보여주더니 '버드맨'에서는 아예 원테이크 같은 마법같은 촬영을 보여주었죠.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특기라고도 할 만한 롱테이크 장면이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조금 감독이나 촬영감독 본인들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듯한 느낌도 들긴 합니다만 어느 감독이나 그렇지 않을까요? 여튼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는데 몰입감이 높아지는 것만큼이나 관객들의 피곤함도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롱테이크 장면만이 이 영화의 다는 아닙니다. 압도적인 자연과 그 속의 인간의 모습을 장황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찍어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액션과 연출들이 가감없이 스크린에 비춰지는데 대단합니다. 그런 압도적인 촬영에 압도적인 분위기를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몰아치니 관객들이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대로 조금은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2시간 40분을 계속 이런 압박에 시달리니 영화를 보고 나서 뻗어버릴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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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배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골든 글러브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당연히 상을 받을 만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진짜 불쌍함이 뼈에 사무칠만큼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뼈에 사무친 분노를 내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사도 거의 없는 캐릭터로 표정과 눈빛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복수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면 단순히 고생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는 이미 명배우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나 싶더군요.


톰 하디. 어찌보면 베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악랄하고 비열한 연기를 잘 보여줍니다. 살을 좀 뺀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캐릭터를 위해서 일부러 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작 '레전드'에서도 다른 것들은 몰라도 그의 연기 하나만큼은 남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의 레오나르도와 함께 투톱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에 걸맞는 연기를 했다고 봅니다.


이 정도의 연기를 다들 보여줬다면 사실 오스카에서도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기에는 모자람이 없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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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개공생을 하며 연기를 하긴 했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톰 하디가 맡았던 피츠제럴드는 악역으로 나오고 있고 악역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악역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비중이 적지 않은데 너무 한결같은 모습만 보여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그렇게 따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휴 글래스라는 캐릭터도 그렇게 변화가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래스는 다양한 상황도 직면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일단 '생존'과 '복수'에 대한 갈망이 굉장한 캐릭터로서 인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괜찮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단점들을 생각하더라도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연기 자체가 굉장했기 때문에 캐릭터의 평면적인 단점을 커버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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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절대 대중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감독의 스타일 그리고 굉장한 촬영기법과 배우들의 열연을 한 번쯤 '느껴'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15세치고는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장면도 등장하기 때문에 데이트용으로도 가족용으로도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봤으면 싶은 작품입니다. 언제 또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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