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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데드풀을 보고 왔습니다. 아마도 마블과 DC를 통틀어 가장 괴상한 캐릭터라고 생각되는 이 녀석은 일단 자신이 '만화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는 녀석입니다. 그래서 코믹북을 보더라도 그러한 부분을 잘 활용한 연출들이 돋보이죠. 가령 자기가 페이지를 찌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거나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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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캐릭터는 사실 한 번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울버린-오리진'에서 뮤턴트들을 가둬두었던 마지막 장소에서 울버린과 최후의 대결을 펼치죠. 이게 제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서 나왔던 데드풀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았었죠. 여튼 울버린에서 나왔던 데드풀은 데드풀 캐릭터의 흑역사(라이언 레이놀즈에게도 흑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캐릭터이니 일단 기억에서 지우도록 하죠.
사실 조금은 걱정이 컸습니다. 이렇게 괴상한 캐릭터를 과연 잘 살릴 수 있을까? 특히나 직접적인 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다는 것도 아니고 엑스맨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20세기 폭스에서 과연 엑스맨말고는 성공한 히어로 무비가 없는 상태에서 잘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R등급 즉 19세 관람가 등급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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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 홍보물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이건 봐야겠다'라는 느낌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다들 약을 한사발은 먹고 만든 듯한 홍보물들은 얼핏봐도 데드풀이라는 캐릭터를 굉장히 잘 살리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야제 개봉을 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봤습니다.
재밌더군요. 그냥 이 영화는 약빤(?) 제작자들이 더 약빤(?)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4차원 캐릭터인 데드풀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뿐만이 아니라 엔딩 크래딧이며 오프닝이며 영화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죄다 약빤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재미는 상승했죠.
사실 이번 작품도 단독 히어로(?) 영화의 시작이기 때문에 다른 히어로 영화들의 시작과 그 궤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슈퍼 능력을 얻게 되고 그걸 이용해서 적을 처단하고 그리고 어느 정도의 훈훈한 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구성은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타성에 젖어있는 1편의 문제점을 캐릭터로서 완벽히 무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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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만들어지기 전, 후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고 싶지만 귀찮아서 못 하겠고 그냥 '데드풀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필요없지 않을까 싶군요. 그 만큼 캐릭터성이 확실합니다. 그 어떤 히어로 무비의 캐릭터보다도 뇌리에 깊게 남죠.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나 현실과 영화 속 세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언급하다는 겁니다. 가령 자비에 교수를 만나러 가자고 할 때는 "맥어보이야? 아니면 스튜어트야? 시대가 헷갈려서.."라는 등의 농담을 던지며 수시로 화면을 응시하며 관객들에게 말을 겁니다. 심지어 폭력적인 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카메라를 돌리기도 하죠.
게다가 스스로를 디스하기도 하는데 본인이 연기했던 과거 데드풀 피규어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또 본인이 연기했던 (완전히 망한) 그린랜턴은 언급하기도 합니다. 실제 엑스맨 캐릭터들을 수시로 언급하며 실제 배우들 이름도 그냥 시종일관 필터링없이 나불대죠. 그리고 역시 그런 맛이 있기에 이 영화는 재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애론 소킨의 영화를 능가할 정도로 쉴새 없이 주절대는 말빨은 가히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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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물론 캐릭터도 잘 살리고 캐릭터도 잘 살리고 있지만 액션도 적당히 가미되어 있고 멜로(??!!!)도 적당히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발렌타인데이 어쩌고 하면서 홍보를 해 대는데 1%의 멜로는 있어줘야 배신감을 안 느끼겠죠. 여튼 적당한 액션과 적당한 드라마가 나오지만 아쉽게도 그런 부분들조차 시리즈 1편의 단점들을 그대로 복습하고 있습니다. 약한 적, 뭔가 아쉬운 액션, 떡밥들….
하지만 단점이라면 역시나 꽤 많은 사전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일 듯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100% 이해한다면 그건 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히 마블 코믹스 세계 뿐만이 아니라 미국 문화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죠. 그래서 (보통의 관객보다는) 저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다고는 하지만 100%까지 이해를 하지는 못 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영화 속에서 언급했던 대사들에 대한 해석도 나돌 지경이니까요.
그리고 아쉽게도 이 영화는 정말 순수하게 19세 관람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사지절단, 베드씬, 노출, 피, 칼, 총, 욕, 섹드립 등 하여간 19금에서 나올만한 것들은 죄다 나옵니다. 그러니 혹여나 성인들만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들하고 볼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사귄지 얼마 안 된 커플도 가능하면 감상을 자제했으면 좋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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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세 관람가 등급을 정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일단 흥행에 걸림돌이 되니까요. 이 흥행 때문에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한 디즈니는 절대 19세 관람가 등급의 히어로 영화를 만들지 않죠. 하지만 폭스는 과감한 도전을 했고 영화는 굉장했으며 흥행은 뭐….두말 할 필요가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미성년자일 때 부모님들하고 집에서 19금 영화를 안 본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수위가 너무 세군요. 뭐 과거의 저희 집이라고 해도 보여주실 것 같지 않은 수준의 진정한 19금 오락영화입니다. 따라서 미성년자들은 조금만 기다리세요….히어로 영화 좋아하시는 성인분들은 당장 달려가시구요.
참고로 쿠키 영상도 대단합니다. 짧고 굵은 것이 아니라 길고 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