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대를 초월한 두 여성의 이야기"



후퍼 감독의 '대니쉬 걸'을 보고 왔습니다. '킹스 스피치' '레 미제라블'로 그 명성이 상당히 올라간 톰 후퍼의 신작 '대니쉬 걸' 1920년대 덴마크의 화가 에이나 베게너가 릴리 엘베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언급하지 전에 얘기해야 할 부분은 이 영화는 최신작 '캐롤'이나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는 다른 소재의 영화라는 겁니다.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동성애자'들에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고 본 작품은 정말 개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애초에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믿고 있는 한 개인 릴리 엘베 본인의 일기를 통해 그녀가 겪었던 본인과 주위 사람들의 고통 그리고 인류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과장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1920년대면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이고 이전에도 몇 번 언급을 했던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튜닝의 경우만 봐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과연 훨씬 이전에 몸은 남자인데 정신은 여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의 말을 믿어준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들에 대한 시선이 많이 변했다고도 할 수 있는 지금도 '평등'하게 보지 못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의 100년에 가까운 과거에 그런 부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랬던 부분은 릴리 엘베 본인이 아닌 그의 부인이었던 게르다입니다. 물론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하고 성 전환 수술까지 받은 릴리도 대단하지만 결혼을 하고 6년동안 나쁘지 않았던 부부관계와 2세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 그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여성으로서 변해가는 릴리의 모습을 바라봐주고 보살펴 준 그녀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만약 릴리에게 게르다가 없었다면 그렇게 성전환 수술을 받고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지니게 만들 정도로 어느 정도의 고통은 받게 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준 게르다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그런 두 인물을 영화 속에서 표현한 에디 레드메인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물론 노출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올 노출을 감행하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하며 점차 여성의 모습을 찾아가는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어색했던 초반의 릴리가 나중에는 에이나르의 모습이 어색해질 만큼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르다를 연기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남편이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으로 시작해서 결국에 그녀를 받아들이는 마지막의 기쁨까지의 감정을 과장되지 않게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이 둘의 연기는 다른 때 같았으면 오스카 트로피를 쥐어도 손색이 없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


이런 배우들을 관리하면서 기막힌 연출을 이끌어간 톰 후퍼 감독은 여전히 군더더기기 없는 화면을 보여주면서 생각보다 많은 은유적인 표현을 영화 속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굉장히 직접적인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지만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모두 화가이다 보니 그림을 이용한 심리를 표현한 것이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풍경이나 그림 그리고 대사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주인공 릴리의 감정을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부분이 꽤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 중에 하나는 릴리가 릴리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지니는 초중반에 게르다가 딜러를 만나는 장면에서 뒷 배경을 보면 화면의 좌우로는 남성과 여성의 누드 그림이 배치되어 있고 중간에는 양 진영이 전쟁을 하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죠. 이렇듯 사물들을 잘 보시면 의미심장한 것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재밌습니다. 요즘 감상한 영화들은 대부분 장르가 매니악하거나 이야기가 매니악하거나 연출이 매니악해서 추천을 드리기가 힘든 영화들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소재적으로 약간의 인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적 재미나 드라마적 장르로서의 재미가 확실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하고 톰 후퍼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도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여성분들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꽤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출로 인한 (거의 모든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나옵니다.) 19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기에 미성년자들은 안 되겠지만 데이트용으로도 괜찮고 가족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여성분들끼리는 보셔도 괜찮지만 남성분들끼리는 평소 취향이 비슷하지 않은 이상에야 같이 보기 힘드시리라 생각되는군요.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