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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반응이 상당히 갈리고 있는 '007스카이폴'을 보고 왔습니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자 23번째 작품인 이번 시리즈에서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있더군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일단 영화 자체는 상당히 재밌었고 007 시리즈가 아니라고 가정하였을 때도 충분한 수작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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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는 MI6 본부도 그렇고 M도 그렇고 007도 그렇고 참 난항을 많이 겪습니다. MI6 본부는 박살이 나고 M은 청문회에 불려다녀야 되는 상황이고 007은 거의 죽다 살아나죠. 그리고 이러한 영화 속 장치들은 이 영화가 시리즈를 완전히 새로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완벽히 그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셔야 어떤 의미인지 파악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새로운 시작'은 리뉴얼이나 리붓과는 좀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게 되면서 007이란 시리즈의 리뉴얼을 어느 정도 행했었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전작에서 행해졌던 리뉴얼들을 바탕으로 새로이 시작하기 위한 완벽한 구성을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에 피어스 브로스넌이 007을 맡으면서 그 소재에 있어 문제가 발생하자 '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시야를 바꾸어 놓았다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에서는 시리즈 자체를 완벽히 재창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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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재창조는 영화 속에서 그 의미를 자주 보여주고 있어서 그 의미가 너무 쉽게 전달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선 가장 큰 틀에서 이번 007 시리즈의 주된 내용은 '과거'와 '현재'의 불협화음입니다. 한 때는 MI6의 유능한 인재였던 '실바'라는 인물은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습니다만 과거 MI6로부터 버림을 받다싶이하여 결국 MI6를 등지고 M을 없애버리려고 하죠. 실바가 영화 내내 본드를 직접적으로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도 본드도 그러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본드도 자신과 같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런 본드도 곧 Q라는 인물과 만나면서 본인 스스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현재'와 만나고 있는 것이죠. 이 둘의 관계는 시작부터 약간의 불협화음을 보여줍니다만 나름 이 영화의 코믹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Q의 등장으로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첨단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옵니다. 지문 인식 권총이죠. (이 장면에서도 과거 007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새로운 머니페이의 등장과 함께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큰 변화를 준 부분 중에 하나로 'M'과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을 얘기할 수 있을 듯 싶군요. 솔직히 좀 놀랬습니다. 주디 덴치가 연기한 M은 주인공이 3대째 바뀌는 동안 연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007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순전히 감독의 과감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참 아쉽더군요.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렸으니까요.

 

이렇듯 영화는 영화 전반에 걸쳐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정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죠. 그건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007 시리즈' 자체가 앞으로도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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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야기들 때문에 영화는 (제가 본) 시리즈 중에서 가장 드라마적 요소가 강합니다. 액션의 비중은 거의 없죠. 게다가 서정적인 느낌마저도 듭니다. 아마 '카지노 로얄'이나 '퀀텀 오브 솔러스'와 같은 액션성 짙은 007을 생각하고 가신다면 상당히 실망을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액션은 그야말로 밑반찬 중에 하나라고 할까요?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그런 수준입니다.

 

이런 부분을 마냥 좋게만 생각하기에도 그럴 것이 이전 '피어스 브로스넌'이 007을 맡았던 영화들을 보면 워낙에 첨단 무기와 함께 적들을 싸그리 쓸어버리는 그런 연출이 많았었는데 그 당시를 생각해 본다면 '다음 007에서는 또 어떤 첨단 자동차가 나올까?'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였죠.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은 이후로 나온 무기라고는 이번 스카이폴에서 나온 지문인식권총이 처음입니다. 최첨단 자동차? 그런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죠. 오히려 액션 자체는 '본 시리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짧고 빠르게 합을 겨뤄 죽이는(?) 그런 스타일 말이죠. 그렇다 보니 취향의 문제가 확실히 갈리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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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은 이후로 재미없게 본 시리즈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평을 받았던 '퀀텀 오브 솔러스'도 나름 재밌게 보았구요. 아니 그것보다 과거 007을 찾아보면서 느낀 것은 007 시리즈만큼 오래 된 시리즈가 매번 나올 때마다 일정 퀄리티 이상으로 나와준다는 것이 고맙게 생각됩니다.

 

첩보 영화의 마스터피스....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첩보영화=007(혹은 제임스 본드)라는 공식이 성립된 시기가 있었던 만큼(본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시리즈가 이어지니 마니 하는 과정에서도 나름 재밌는 첩보 영화를 만들어주고 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만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에 대한 함축적 대사를 인용하며 이번 감상기를 마치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늙은 개"

 

내 맘대로 별점 : ★★★

 

덧1. 이번 작품은 유일하게 '본드걸'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충분히 의도한 설정이겠죠.

 

덧2. 제가 본 시리즈 중에서 007 스코어가 이렇게 벅차게 들린 적은 처음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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