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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전작 '부러진 화살'을 아주 만족스럽게 보았기 때문에 전작보다 강한 돌직구들이 던져진다는 얘기를 듣고 한 치의 말성임도 없이 감상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부러진 화살 정도의 사회 비판 내용과 재미를 도루 갖췄다면 이번에도 만족하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품이더군요. 위트와 유머가 있으면서도 사회 비판은 철저히 보여주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정말 순수한 현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트와 유머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감상을 하기에 조금은 조심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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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다들 아시다시피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서 22일 동안 고문당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는 좀 더 순화시켜서 보여준다고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영화의 90%는 '고문' 그 자체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 영화의 반응을 가르는데 상당히 큰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고문으로 인해 한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굴복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죠. 그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럽습니다. 엄청나죠.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돌직구를 던지고 있습니다. 전작 '부러진 화살'에서는 돌직구만 던져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강속구까지 더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돌직구와 강속구는 분명 그 효과는 큽니다. 아주 많이요. 문제는 9회 내내 (강속구가 포함 된) 돌지구만 던져대니 영화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만한 부분을 찾기가 힘듭니다. 매 순간이 고비고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에게 심적인 부담감도 많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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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는 영화를 보고 30분만 지나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변화구를 던져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감독이 '고문'과 한 인간의 사투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더 좋은 케이스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엔딩에도 고문에 희생 된 사람들이 나오더군요. 그 중에는 김근태 전 의원보다 더 오랫동안 고문을 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실제로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고문과 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사투를 보여주고 했다면 그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서 보여주어도 충분했을 겁니다. 김근태 전 의원이 민주화 운동을 한 핵심 인물 중에 한 명이고 그러한 배경이 김근태 전 의원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라고 한다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을 당하면서 거짓 진술을 하고 그것을 적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암기를 하는 부분들이 분명 나오지만 그 정도로는 '고문'이라는 적대 세력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족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심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이 더 와닿았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에서는 '고문'에 반하는 그 무언가의 존재감이 좀 더 크게 어필이 되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얘기가 왔다 갔다 한 것 같은데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겁니다. "너무 '고문' 그 자체에 비중을 너무 싣고 있다. " 고문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서 느끼게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한 인간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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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그 목표의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고 배우들의 열연은 가히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입니다. 박원상과 이경영은 실제로 고문을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과 고문을 행하는 피의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의심 될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죠.

 

특히 마지막의 감정적 폭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둘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시점상으로는 결말에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연기적인 부분에서 하일라이트라고 할 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그 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값어치는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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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미를 논하자면 재미는 없습니다. 너무 무거워요. 근래 수 년동안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무겁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영화입니다. 쉽사리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중간에 극장을 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고문의 수위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닙니다.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정도에서 그칩니다. 하지만 고문을 행하는 사람들의 표정, 행동, 말......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고 듣게 되면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분위기는 대단합니다. 소름끼칠 정도로요....

 

 

내 맘대로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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