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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토론의 여지를 주는

봉준호 감독의 첫 디스토피아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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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전부터 워낙에 기대가 컸던 설국 열차를 일본서 돌아오자 마자 감상을 하고 왔습니다. 생각 외로 반응이 괜찮았고 게다가 이상하리만치 대중적으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지라 그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바로 저녁 티켓 예매해 놓고 저녁도 대충 먹고 달려갔죠.


생각해 보면 봉준호 감독도 많은 작품을 만든 감독은 아니고 저도 그의 작품을 필히 챙겨보려고 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감독의 전 작품을 모두 감상한 몇 안 되는 감독 중의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플란다스의 개부터 마더까지 말이죠. 그리고 다행히도 그의 작품들 중에서 이렇다 할 만큼 실망을 준 작품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크게 불안감을 가지지 않았고 그런 감정은 영화가 끝날 때에는 말끔히 해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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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미 다른 블로그나 포탈 사이트에서 많은 리뷰를 읽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많은 리뷰 글에서 이 영화의 심오한 의미와 환경에 대해서 충분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되기에 그 분들의 필력을 따라갈 수 없는 저로서는 그냥 제 느낌을 전달하는데 치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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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무겁습니다. 묵직해요. 분위기도 그렇고 캐릭터들도 그렇고 가벼워 보이는 인물조차도 묵직한 그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 묵직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희한한 것은 이런 묵직함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있고 개그 요소라고는 단 한 컷도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잔혹한 장면도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이 의외로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이 후에 올릴 '더 테러 라이브'도 그렇고 두 편의 영화는 현실의 세계를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투영하고 있는 모습이 절대 '밝은 세상'이 아니죠.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투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가 마지막에 그랬듯이 설국 열차의 커티스도 그런 사회에 불만을 느끼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대리 만족으로 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생각해 보면 현실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영화 속에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것과는 좀 더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메이슨’이나 ‘윌포드’가 주구장창 외치는 대사 때문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차의 모든 사람은 정해진 위치에 있어야 질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라는 것이죠. 결국 이것은 단순히 계급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그대로의 정해진 위치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메이슨의 경우 그 수를 맞추기 위해서 맨 뒷 칸의 사람들을 몇 %만 죽이라고 합니다. 윌포드도 마지막 주인공과의 독대에서 기차 내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길리엄과 주기적으로 반란을 도모했다고 하죠. 만약 이게 계급 사회를 보여주고 있고 그 계급 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그 수 많은 반란 시도 중에 한 번은 성공을 한 사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영화 내용 중에 그림으로 반란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윌포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흔적도 없구요.


그래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이 사회가 하나의 생태계로서 균형과 질서를 맞추고 있다면 그것을 맞추는 것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런 의미에서 윌포드의 존재는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여러 게임의 느낌이 많이 나는 영화가 더더욱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어두운 느낌의 SF라면 왠지 그런 전개도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디스토피아적 SF 분위기만 잘 살린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여러 부분에서 디테일이 좋더군요. 물론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각 열차 칸에서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각 열차 칸의 풍경 등 실제로 만들었다고 하는 설국 열차의 매 칸들의 모습은 상당히 잘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설국 열차 밖의 모습도 완벽히 실사의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이고요. 외부에서 본 설국 열차의 모습도 그럴 싸 합니다. 그리고 미래 세계에서 어느 정도 나올 법한 장치들도 나오고요. 실시간 번역기도 그 중 하나죠. 


그리고 영화는 그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은근히 미친 듯이 달려나갑니다. 멈추지 않는 설국 열차처럼 말이죠. 거의 쉴 틈이 없는 전개는 이전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연출이었지만 확실히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집중을 할 수 있는 장치며 액션을 수시로 집어넣음으로써 폐쇄적인 열차 공간 안에서 밋밋해질 수 있는 부분을 확실히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상당히 압도적입니다. 물론 그 중에 송강호나 고아성도 포함이긴 합니다만 여러 방면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스크린을 메우고 있으니 그 카리스마만으로도 영화는 지겨울 틈이 없습니다. 일반 관객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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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영화의 묵직한 분위기와 비례하듯이 말이죠. 남궁민수의 과거나 요나의 능력,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나 유독 그녀를 노리고 덤벼들었던 (인간 같지 않았던) 요원들 그리고 윌포드가 어떻게 열차를 만들었고 어떻게 사람들을 모았으며 갑자기 왜 주인공을 우두머리로 (물론 주인공이 어느 정도 기차 안의 생태계에 대해 수긍을 하긴 했지만…)만들려고 하는가 등 뭔가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주인공 위주로 가다 보니 주인공이 과거사를 들려주긴 하지만 어째서 길리엄이 윌포드와 손을 잡게 되었는지 등 영화 상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들도 그다지 설명이 없습니다. 길리엄이 자기 손을 자르고 맨 뒷 칸에서 거지 같이 살아도 아무 불만이 없었던 것인지도 궁금하구요.


글쎄요. 해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부분들도 있긴 하지만 아예 단서조차 주지 않은 부분들도 있으니 뭐라 해석하기가 힘듭니다. 요즘 설국 열차 프리퀄에 해당하는 만화도 나오고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다고 하니 이것들도 좀 찾아봐야겠지만 영화로만 본다면 이 영화는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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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고 재미있다고 말씀 드리는 이유는 역시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제외하더라도 비쥬얼 / 액션 / 배우들의 연기 / 스토리만으로 충분히 일반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본다면 이후에 리뷰를 올릴 '더 테러 라이브'가 훨씬 가볍고 대중적인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우리나라 관객 분들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재미를 느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감독이 외국 배우와 한국 배우를 섞어가면서 영화를 찍었음에도 그다지 싼 티가 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주 그럴싸하게 보입니다. 아니 영화가 그럴싸하게 나왔어요. 다른 말은 필요 없겠죠.


내 맘대로 별점 : ★★★★



덧1. 정말 겜덕후로서 꽤 많은 게임들이 생각나더군요.


덧2. 의외로 고아성 양의 영어 발음은 자연스러웠습니다.


덧3. 이렇게 버려지는 캐릭터가 별로 없는 영화도 오랜만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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