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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08 / 26 / 033]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의 신작 'V.I.P.'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대호에서 크나큰 쓴 맛을 보고 오랜만에 돌아온 차기작인데 사실 이번 작품도 개봉 후에 그렇게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었죠. 자세한 리뷰까지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SNS 등의 올라온 단문들을 보면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습니다.


뭐 그렇다고 안 볼 것도 아니고 해서 후딱 보고 왔습니다. 보고 나서의 느낌을 말하자면 박훈정 감독의 최고작은 여전히 신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VIP는 감독 스스로 신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려 했지만 벗어나지 못 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다가 여전히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오마쥬 덩어리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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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북한의 고위 장성의 아들이 싸이코고 그런 싸이코의 정체를 모르고 남한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VIP를 넙죽 받습니다. 그리고 그 VIP는 한국에서도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다니죠. 영화는 그런 범인의 정체를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냥 범인이라고 지정하고 시작을 하죠.


이미 범인이 지정된 상태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중반으로 다다르는 영화는 국정원과 경찰과 미국의 줄다리기를 시작하면서 수사물이나 범죄물이 아닌 얼핏보면 정치물에 가까운 구성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의 구체적인 장르가 무엇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애매합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마치 이 영화는 범죄물에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싸이코와 그 일당들이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들을 보여주죠. 그러다가 VIP가 잡히면서 이 영화는 수사물에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인 부분들이 작용을 하면서 장르가 굉장히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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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본적인 장르는 범죄물이지만 저렇게 많은 장르를 느끼게 만든 것은 감독 스스로 범죄물만으로는 영화가 단순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점으로 생각되더군요. 차라리 신세계에서 느와르에 집중했듯이 이 영화는 범죄물 그 자체에 집중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부분은 좀 많이 줄였으면 좋겠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 2시간이 좀 넘는 상영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될 만큼 영화는 어느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전달해 줍니다. 각 장면에서 필요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연출적으로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묵직한 무게감과 바짝 조여오는 긴장감과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머는 그냥 그 자체로 즐길만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가 마무리될 때마다 느껴지는 클라이막스의 분위기와 다음 챕터에서 느껴지는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느껴지는 분위기의 흐름이 꽤 좋습니다.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지 않고 적절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들죠. 하지만 그렇다고 배경이나 시점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굳이 챕터를 나눌 필요가 있었나? 라는 의문도 들긴 합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이어지는 연출도 나름 괜찮았구요. 사실 프롤로그만 보면 '저런 장면이 뒷 이야기와 어떻게 이어지는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영화가 엔딩에 다다를 때까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다가 에필로그에 가서야 드디어 이어지게 되죠. 사실 거의 생각지 못 한 부분이었기에 꽤 괜찮은 연출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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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왠만큼 연기한다는 사람들이 거의 다 나오죠. 김명민, 장동건, 박희순, 그리고 이종석까지요. 당연히 가장 의외라고 생각될 배우가 이종석인데 그가 악역을 맡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물론 그의 연기가 일관된 캐릭터를 연기한 부분도 있었고 비쥬얼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스스로 그러한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앞으로 연기의 범위를 많이 넓혀나가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이 장동건인데 사실 연기를 위한 배역을 꽤 많이 맡긴 했지만 이상하게 최근 들어서는 연기에 대한 혹평이 꽤 많은 편이었죠. 우는 남자 때도 그랬구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오히려 미중년으로서의 자연스러움을 풍기면서 적절한 발성과 액션을 보여주었지 싶네요. 하지만 욕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박희순은 오히려 비중이 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시나 연기를 잘 해주었는데 너무 초반과 너무 후반에만 등장을 한 것은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초반에 좀 더 비중을 넣은 다음에 후반에는 그냥 등장시키지 않는 것도 괜찮았으리라 생각되었는데 말이죠.

 

김명민도 사실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배우이죠. 찰진 연기를 굉장히 잘 보여주었습니다. 장동건보다도 욕이 잘 어울렸구요. 신경이 항상 극도로 예민한 상태의 형사의 모습을 시종일관 뿜어내는데 그냥 딱 그 형사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뭐랄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캐릭터와 비슷하기도 했는데 끝까지 잡아넣으려고 하지만 결국엔 좌절하고 타협하게 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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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다는 리뷰들도 많던데 실제로 살인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초반에 딱 한 장면입니다. 노골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기도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추격자보다도 잔혹성에 있어서는 약한 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잔인한 장면이 걱정되어서 관람을 주저하시는 분이라면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19세에 영화에서 볼 정도의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쉬운 것은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것인데 사실 신세계에서도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캐릭터는 있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여성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오히려 캐스팅이 잘 되어서 좋은 캐릭터를 잡았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더 좋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거친 역할을 굳이 남자 배우로 국한지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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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보다는 당연히 재미나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작품입니다만 이런 분위기의 작품이 쉽게 나오지 않는 국내 영화 시장이라서 가볍게 한 번 보시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주 재밌는 영화도 아니라서 강추까지는 못 하지만 범작의 수준에서 줄 수 있는 재미는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앞으로 이런 작품을 좀 더 과감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참고로 19세 영화고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애인이나 가족과 보시려는 분들은 어느 정도의 잔혹함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얘기를 해 주시고 동행하셔야 할 듯 합니다. 너무 초반에 나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움찔할 가능성이 많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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