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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03 / 25 / 015]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공녀'를 보고 왔습니다. 영문제목은 'microhabitat'.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미소생물이 서식하는 특유의 다양한 환경 조건을 갖춘 장소'라고 나옵니다.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다양한 환경을 갖춘 장소가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이겠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 왜 제목이 '소공녀'와 'microhabitat'로 작명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주인공 이름은 '미소'입니다. 정말 노리고 만든 제목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죠. microhabitat가 미소생물이 서식하는 장소라는 뜻인데 주인공 이름이 미소입니다. 즉, 이 영화는 그냥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죠. 그리고 사실 그 이상의 해석이 필요한 영화도 아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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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특별한 직업이 없습니다. 특별한이라는 부사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뜻이 전문적인 직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스탠다드, 일반적인 직업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정부로서 지인이나 낯선 이들의 집을 청소하고 일당을 받는 그녀는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허름한 방에서 생활합니다. 추워서 섹스도 못 하는 방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녀가 불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일당 4만5천원을 받으면서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 생활을 고수하며 방값이 오르자 과감히 방을 떠납니다. 일반적이라면 당연히 위스키와 담배를 줄일 것이고 그녀가 거쳐간 지인 중 한 명은 그런 부분을 직접적으로 던지기도 합니다. 속으로 뜨끔하죠. '그래...일반적이면 그게 맞지'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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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는 주인공 미소의 지인들의 집을 거쳐가는 단계마다 그들의 모습을 가끔은 적나라하고 가끔은 은유적으로 그 치부를 드러냅니다. 이혼한 동생, 직장이 없는 남편과 시부모를 데리고 사는 친구 1, 직장에 쪼들리는 친구 2, 부잣집에서 살지만 편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마음은 넓지 않은 언니 등등 집이 있고 가정이 있지만 그들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유니크하고 레어한 삶을 사는 그녀가 가장 정상으로 보일 정도죠. 엔딩에서 미소의 밴드 지인 중 오빠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그들을 다 모입니다. 그리고 미소가 자기들 집에서 머물러간 이야기를 하죠. 다들 좋았다고 하고 미소의 미소가 예쁘다는 얘기만 하지만 그들 스스로 보였던 치부는 끝끝내 얘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불행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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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엔딩에서 미소의 모습은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백발이 되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결국 백발을 막아주는 한약을 살 돈조차 없어서 백발이 된 것이죠. 그리고 다리 밑 강가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값이 오른 위스키를 즐기죠. 그녀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출로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산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죠.


엔딩에서 의외였던 부분이라면 그래도 해외로 떠난 남자친구에 대한 연출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감독은 그런 안일한 연출에 타협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아쉽기는 했지만 여운은 강하게 남는 엔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운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구요. 만약 해피엔딩으로 가는듯한 연출이었다면 오히려 그 이전의 완성도가 무마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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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과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눈에 들어왔던 이솜이라는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거의 단독 주연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일대다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영화 특성상 그녀는 다양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을텐데 어떤 배우와 연기를 해도 그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더군요. 주연으로서 손색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큰 키와 이국적인 마스크 그리고 저음에 가까운 목소리는 이솜이라는 배우의 특징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눈에 띄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그녀의 필모가 앞으로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어떻게 보면 악역으로도 상당히 어울릴 것 같아서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을 맡아보면 여배우로서 희대의 악역을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찾아서 볼 만한 작품이었고 후회는 없는 작품이었어요. 독특한 각본과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기 그리고 남일 같지 않은 시나리오는 이 영화의 매력을 충분히 높이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상영 시간이 좋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맞춰서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나 이번주에는 레디 플레이어 원도 개봉을 하니 더 힘들어지기 전에 감상을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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