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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01 / 028 / 005]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 지니어스>를 보고 왔습니다. 원제는 <spy in disguise>인데 변장한 스파이 정도로 해석하면 될려나요? 여튼 우리나라에 개봉한 제목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긴 해도 영화 내용만 본다면 원제가 훨씬 어울리기는 한 것 같더군요. 이 작품은 크게 관심을 가진 작품은 아닌데 국내 시사회 반응과 개봉 후 반응이 좋아서 연휴 마지막 날 보고 왔습니다.
최근 들어 애니메이션은 거의 디즈니 혹은 디즈니-픽사 작품만 보다가 오랜만에 다른 제작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니 확실히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캐릭터의 비쥬얼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 아이디어나 주변 캐릭터까지 신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즘 너무 디즈니가 독주를 하고 있는데 이런 걸 보면 다른 제작사들도 힘을 좀 내줬으면 좋겠더군요.
영화 얘기로 들어가서 이 작품은 초 엘리트 스파이인 랜스(윌 스미스)가 어이없는 사고로 비둘기가 되어 버리고 자신을 비둘기로 만들어 버린 월터(톰 홀랜드)가 해독제를 만드는 18시간 동안 그들을 쫓는 악당에 맞서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이야기만 들어보면 이게 뭔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작품이죠.
그리고 그런 이야기 중간중간에 월터의 과거사를 살짝 곁들여서 신파적인 분위기도 조금 풍기고 하는데 그래서 이야기 자체는 살짝 진부합니다. 뭐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얘기죠. 아주 특별할 것도 없고 아주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DNA가 바뀌어서 비둘기가 된다는 것부터가 거의 마블이나 DC 영화 뺨 치는 수준의 판타지라 만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갈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중요 골자는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와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들을 얼마나 신선하게 사용할 것인가 정도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독특한 소재들을 이용한 연출에 있어서는 정말 애니메이션 답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랜스가 비둘기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재미도 사실상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변신 이후 벌어지는 비둘기와의 사랑(?) 그리고 그가 비둘기가 되었음에도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여러 액션들은 거의 이 영화의 메인 코미디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주연 배우 중에서도 윌 스미스가 메인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랜스가 사람인 시절에는 거의 무적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무쌍을 찍는 걸 구경만 하는 관람객 모드였지만 그가 비둘기가 된 이후에는 다채로운 액션과 더불어 월터의 비폭력 무기(?)들이 등장함으로써 코미디도 코미디지만 액션의 방향도 상당히 달라지게 됩니다. 아마 감독들은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1000% 이용해서 온갖 상상을 다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더군요.
또한 두 배우의 목소리 연기가 생각 이상으로 좋습니다. 오디션을 거쳤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그냥 그 캐릭터 자체에요. 심지어 캐릭터의 비쥬얼도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의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이건 애초부터 두 배우를 캐스팅에 염두를 두고 캐릭터를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더군요. 목소리 연기도 그렇고 둘이 주고 받는 대사의 티키타카도 그렇고 상당히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폐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3D 애니메이션의 비쥬얼적인 퀄리티 차이가 눈에 띄더군요. 물론 이 작품의 퀄리티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만 디즈니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너무 뛰어나서 제 스스로의 기준점이 높아져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그 만큼 디즈니 스스로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얘기이긴 하겠지만요.
이런 비쥬얼적인 퀄리티를 생각해 봐도 이 작품은 재밌는 오락 영화인 것은 맞습니다. 물론 설정과 이야기 자체가 너무 순수한 상상력에 기댄 것 같은 느낌도 들긴 하지만 독창적인 캐릭터 신선한 액션 유쾌한 대사들 등의 장점이 많은 작품이었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어느 쪽 취향이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이들이 더 좋아할 만한 작품이긴 하지만 성인 관객들도 즐길 만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