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천명관이란 작가는 저한테는 생소합니다. 그의 작품을 찾아 본 적도 없고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적도 없죠. 이 책도 그냥 서점을 서성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그 내용이 마음에 들었기에 읽어 본 것이지 그 외에 사항이 저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재미는 있더군요.
얘기는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요즘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왜 이렇게 '회상'이란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바깥에서 얻은 자식인 삼촌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집을 찾아와 같이 살게 되죠. 이 삼촌은 이소룡(브루스 리)에 아주 미쳐 삽니다. 아마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이소룡'인데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삼촌이란 존재는 '이소룡'으로 인해서 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 뒷편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진짜가 되고 싶었던 가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가짜'의 존재가 바로 삼촌이죠. 1권의 내용만 보면 삼촌은 정말로 이소룡이 되고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실패를 합니다. 이러한 도전과 실패의 이야기를 1권에서는 아주 주구장창 보여주죠. 독자들이 지칠 만큼 그에게 많은 시련을 줍니다. 글쎄요. 2권에서는 어떻게 진행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조금은 그의 인생이 풀려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확실합니다. 아주 술술 읽혀집니다. 몰입도 잘 되구요. 사실 클라이막스라고 할 만한 부분도 애매하고 스케일이 아주 큰 편도 아닙니다. 정말 뭐랄까 옛날이었다면 어디선가 봤을 법한 어린 삼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지켜보는 느낌이죠. 아마 이 책으로 인해서 천명관이란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3계단으로 유명한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것도 작가가 누군지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내용이 끌려서 샀다가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뭐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기고 책의 재미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제노사이드란 단어는 홀로코스트와 비슷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정 집단을 학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죠. 책에서도 그런 제노사이드에 대한 묘사와 내용이 끊임 없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제노사이드로 인해 주인공들은 크나큰 시련을 겪습니다. 이야기는 미국의 용병과 일본의 약학자 2명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미국의 용병은 어느 날 막대한 금액을 제시받고 콩고의 어느 마을에 투입되어 마을의 모든 인물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일본의 약학자는 어느 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어떤 약'을 한 달 안에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비를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용병은 자신의 삶이 목적이 아주 확실하면서 자신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어쨌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으며 반대의 약학자는 자신의 삶을 목적을 모른채 무료한 삶을 살아가지만 어쨌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두 편의 이야기를 아주 절묘하고 교묘하게 연결시키고 있어서 내용 전개에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개별적인 2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흥미 유발에 아주 좋았다고 생각이 되더군요. 그리고 그러한 전개 속에서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상당히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왜 같은 사람을 죽이는가? 진짜로 인간은 성악설에 기반한 동물인가? 등등 어찌보면 철학책이나 심리학 책에서 나올 법한 주제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앞서 얘기했던 바와 같이 그러한 주제들을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거부감이나 이해의 어려움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아닙니다만 읽다 보면 자동적으로 이해가 되도록 짜여져 있는데다가 책의 두께에 비해서 어마어마한 몰입감과 재미를 주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독파가 가능하니 부담없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